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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Oct 07. 2020

실수 범벅인 카페 알바. 나 적응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난 이런 일에도 완벽하고 싶어.

완벽주의자를 지향하는 나는 새로 시작되는 모든 일의 초입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만(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극소수의 사람들은 제쳐두고), 익숙해지는 그 과정에서 과하게 괴로워한다. 이런 행태는 사소한 일에도 어김없이 반복되는데 알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 카페는 처음이고 샷을 내리는 기계도 다른 형태여서 하루 종일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긴장하며 서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누가 내 옆구리를 쿡하고 찌르면 관등성명을 댈 것 같은 자태였다(무슨 모습이었는지 대강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나 부들거렸는지 아인슈페너 위에 장식으로 견과류 가루를 뿌리는데 창피하게도 손이 덜덜거려 옆에 있던 사장님이 흠칫 놀래시면서 왜 그러냐고 괜찮다고 긴장하지 말라고 달래주셨다. 특이하게도 이런 어리숙한 모습이 사장님 눈에는 예쁘게 보였던 것 같은데, 하긴 자기보다 20살은 어린애가 잘해보겠다고 진동벨 마냥 부르르 거리는데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겠지.


어딜 가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들었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나였지만, 일주일 동안은 실수의 연속 또 연속이었다(실수 안 하겠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설거지를 하다가 컵을 깼다. 컵을 놓친 것도 아니고 싱크대 안에 있던 컵이 물줄기에 옆으로 쓰러졌는데 그대로 깨지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두 동강으로. 얼어붙은 채로 황망하게 깨진 컵만 멍하니 바라보다 눈치를 보며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 저 컵 깼어요...


그렇게 한동안 멈췄다가 잠시 뒤 사장님은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다친 곳은 없냐고 물으셨다. 그러고서는 설거지는 자신이 할 테니 깨진 컵만 뒷 창고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다. 쭈뼛거리면 깨진 컵을 뒷 창고에 다 놓는 김에 조심성 없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하늘을 올려봤다.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컵을 깼나 하면서. 사실 이건 내가 컵을 깼다고 하기에 조금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깬 건 맞으니까.


깨진 컵과 더불어 아비규환이 된 내 멘탈. 이 날 하늘은 내 마음도 모르는지 속된 말로 더럽게    화창했다.


죄인의 마음으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설거지를 마친 사장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거 깬 걸로 풀 죽어있지 말라고 비싼 컵이 아니라 괜찮다고. 그 말을 한 뒤 나를 찬장으로 데려가시더니 누가 봐도 비쌀 것 같은 엔티크한 컵과 접시를 보여주셨다. 이건 비싸다고 한 개에 15만원이니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이날 이쪽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간접적인 경고에 지금도 나는 그쪽 찬장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는 자두청을 만들기 위해 사장님과 함께 자두 껍질을 벗기는데(아마 컵 깬 다음날일 거다) 손이 베여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피가 맺히는 손가락을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 참 가지가지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여기서 손가락 베인 것 까지 걸리고 싶지는 않아 사장님 몰래 슬쩍슬쩍 닦았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깊게 베이지 않아 10분 정도 지나니 피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에 족히 5번은 베인 것 같다.


이뿐만이 아니라 음료를 잘못된 컵으로 나갔다던지, 가게 조명을 한두 개씩 빼먹고 킨다든지, 와플에 견과류를 뿌리지 않는다든지  이런 자질구레한 실수로 범벅인 하루를 보내고 집 가는 길에는 내일은 좀 더 정신 차리고 일해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그렇게 30%, 25%, 20%, 15%가 부족한 하루들을 보내다가 일한 뒤 2주가 지날 즈음에 완벽은 아니고 2%만 어설프게 되었다. 비록 지금도 0%는 아니지만 2%면 감지덕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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