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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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수(놀랄 해駴, 빼어날 수秀)
“서른이 되고 달라진 점”
앞에 3자를 다니까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평일엔 야근하고 주말엔 쉬고 매일 비슷한 점심 메뉴를 선택했다. 다니던 은행에서 승진과 함께 부서이동이 있었는데 그건 나이와는 관계없었고, 본사가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 시키겠다면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연봉이 9%쯤 올랐는데 회사는 딱 그만큼 부려먹을 계획이 있었다. 거래 대상이 개인에서 기업으로 바뀐 후로 외근, 영업, 회식 같이 발로 뛰는 업무가 늘어서 여러 날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분리된 책상에서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어 서류철을 싹 교체한 것. 낮 시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햇빛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것. 비효율적인 업무 시스템에 대한 본사 직통 발언권을 갖게 된 것.
변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작년 말에 엄마 등쌀에 못 이겨 반 강제로 가입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등급을 2단계나 상향 조정해준다고 전화가 왔다. 요즘 결혼시장에서는 배우자의 비유동자산보다 매달 현금 흐름에 보탬이 되는 연봉 자체를 많이 보는 추세라면서 축하한다고도 전했다. 이해수는 은행원인 자기한테 쓰는 일종의 비유인지, 정말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헷갈리는 얼굴로 잠자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이 전화를 끝까지 받지 않으면 당분간 더 자주 엄마 전화를 받게 될 텐데, 그쪽이 훨씬 피곤한 일이다.
매니저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사무적이었다.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매뉴얼대로 자기 할 말을 전했다. 다음 멘트는 ′결혼 적령기′에 대한 안내였다. 꽤 길게 얘기했는데 요약하자면 이랬다. 1)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초혼연령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꾸준히 상승했다. 2)초고속 성장의 시대에 태어난 X세대의 결혼 적령기를 보면, 남성 27.8세, 여성 24.8세였다. 3)20년이 지난 지금은 남성 31.9세, 여성 29.1세 정도다. 여기까지 들은 이해수가 입을 열었다. “나름 발전적이긴 한데, 여전히 많은 여자들이 서른을 무서워한다는 증거기도 하네요.” 매뉴얼을 따라가기에 바빠 보이던 커플매니저가 갑자기 실소를 터트렸다. “하하. 아직은 그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이어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오피셜 한 내용은 아닌데요. 솔직히 요즘 이 시장에선 결혼 적령기를 아예 넘겨버린 35세 정도의 여성들이 더 잘 나가는 추셉니다. 이유가 뭔지는 설명이 좀 어려운데, 실제로 20대 후반 여성들보다 그쪽 성사율이 더 높아요. 아무래도 여유, 그래요! 연륜과 함께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뭔 몇 년 사이에 연륜씩이나 생겨’ 속엣 말로만 툴툴대다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보슬비와 벚꽃 잎이 짝을 이루어 눈처럼 펄펄 내리고 있었다. 날씨 탓인가. 결혼 적령기 타령 탓인가. 약간 감성적인 기분이 들었는지 어느새 또 카카오톡 프로필을 돌려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분명 뭐라도 하나 사게 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렇게 몇 천 원, 몇 만 원씩 충동소비를 한 게 이번 달엔 20만 원이 넘었다. ‘나 심각하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덮어두는 걸 멈추고 근본적인 걸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티멘털하면서 동시에 또렷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