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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입니다 Apr 19. 2024

그녀가 슬픔을 다루는 법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이해수(놀랄 해빼어날 수)

이별을 연습합니다   



  이해수의 적성 검사 결과표에는 문과 쪽인 빨간색에 비해 이과 쪽 파란색 그래프가 월등히 높은 산을 그리고 있었다. 결정은 정해져 있었지만 형식상 부모님 면담이 진행되어야 했는데, 집에 부모님이 안 계셨다. 아버지는 진즉부터 집에 안 들어오셨고 엄마는 이틀 전에 지방에 사는 이모네에 다녀오겠다고 급하게 나가셨다. 남동생은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멍한 얼굴을 했지만 이해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석 달 전에 아버지의 회사가 1차 부도 통보를 받았고 내일까지 은행에 돈을 넣지 못하면 최종 부도처리될 것이다. 이모가 마음을 크게 먹고 담보대출을 받아준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것이다. 어느 정도 예견하긴 했지만 막상 그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컥, 하고 숨이 막혔다.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가 이해수 곁을 지나갔다. 가장 먼저 온 것은 ′궁핍′이었다. 그건 괜찮았다. 경험해보니 조금 불편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온 것은 ′핍박′이었다. 집 앞으로 학교 앞으로 찾아온 빚쟁이들이 아버지의 행방을 물으며 갖은 인상을 썼다. 그것도 괜찮았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궁금한 것은 이해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진심을 다해 되물으면 똥 밟은 표정을 짓고는 그냥 가버렸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지독했으나 피차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에, 대부분 끈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날도 이해수는 야간 자율학습을 1시간만 채우고 편의점 방향으로 죽어라 뛰고 있었다. 애들 야간근무시키다가 걸리면 벌금이 얼만 줄 아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 편의점 사모는 틈날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잘리고 싶지 않으면 잘하라는 말이었다. 이해수는 사모가 감당하는 배꼽의 크기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왼발 오른발을 교차하며 뛰었다. 교문을 통과하고 분식집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름길로 통하는 좁은 골목을 통과했다. 깊게 차오른 숨을 한 번에 내보내기 위해 상체를 한껏 젖혔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를 보았다. 가로등의 사각지대에서 저쪽 방향을 흘깃거리며 약간은 안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그 중년 남자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였다. 




  이해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사람이 아니라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원망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고 성숙한 장녀답게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서 음침하고 축축하게 서 있는 아버지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앞가슴이 뻐근했다. 아버지가 미웠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아버지의 등 뒤에 가서 섰다. 계속해서 저쪽 동향만 살피던 아버지는 다른 방향의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해수야~”했다. 놀란 와중에도 아버지의 목소리는 조마조마했다. 




  자신의 우상, 자신의 꿈, 자신의 행복이 저렇게 작아진 것이 속상해서, 이해수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해수는 그날 그렇게 목 놓아 운 것을 오래도록 후회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자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온 것은 ′통증′이었다. 손발이 저렸고 가슴팍이 따끔거렸고 머리통 전부가 조였다. 그때 이해수는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말보로 멘솔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단숨에 쭉 허파까지 연기를 밀어 넣었다. 목구멍 아래로 알싸한 멘솔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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