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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입니다 Apr 19. 2024

벚꽃 고백 - 클리쉐지만 아름답지요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이해수(놀랄 해빼어날 수)

이별을 연습합니다     



  해수 쟤~ 재수해서 입학한 애, 서울에서 좀 놀았나 보던데? 듣기로는 정학도 한번 먹고 아버지는 건축회사 대표였는데 횡령 혐의로 잡혀갔나 봐. 그래? 조교는 전액 장학금 수여자라던데? 소문은 차츰차츰 확산되었다. 같은 과 동기에서 타 과 동기로, 선배로, 조교로, 구내식당 아주머니로, 수위실 아저씨로, 도서관 사서로. 그렇게 말을 전하는 이들도 알고 있었다. 어떤 소문은 맞고 어떤 소문은 틀리다는 것을. 어쩌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소문의 진위가 아니라, 소문의 당사자보다 자신이 잘살고 있다는 확인일 지 몰랐다. 이해수가 101호 강의실과 102호 강의실 사이를 지나칠 때면, 제 각각이던 뭇시선들이 군무를 하듯 하나로 묶였다. 뜨거운 시선도 있었고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이해수도 다 느끼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또박또박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면 또 여러 말들이 오갔다.      



귀티 컬러 - 파란색 분위기미인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의 행렬은 둘로 갈라졌다. 정문 방향 아스팔트 길을 걷는 학생들은 목적지가 분명한 아침시간 직장인처럼 반듯하고 빠르게 걸었다. 후문방향 흙길을 걷는 학생들은 자유로운 방랑자의 행세를 하고서 느긋하게 걸었다. 후문 방향으로 난 흙길의 마지막 코스는 하나에 30센티가 넘는 19개의 돌계단이었다. 돌계단은 조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름다웠지만 불편하고 위험했다. 다음 계단으로 발을 딛으려면 균형 잡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실용성 제로의 건축 설계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경에 돌계단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그 이유는 그 길을 내려가다가 벚꽃 잎이 어깨에 3초 정도 머물면 일주일 내로 '운명의 짝′이 나타난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은 실제로도 여러 쌍의 캠퍼스 커플을 탄생시켰고, 그렇게 연결된 커플이 결혼까지 골인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심지어 타 학교 학생들도 그 돌계단을 타기 위해 은근슬쩍 견학을 오기도 했다(커플 연결의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그날따라 유난히 돌계단 앞으로 줄이 길었다. “우우~” 함성인지 야유인지 모를 고함소리가 울러 퍼졌다. 자주 있는 일인데, 거기서 커플이 된 애들이, 굳이 거기서 키스를 했다. 설마 하니 제대로 진한 키스를 하는 애들은 잘 없었고, 인증 정도로 가볍게 했다. 그러면 뒤에 줄 서 있던 학생들이 소릴 질러줬다. 결혼식 할 때 하객을 모아놓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잘 살겠습니다′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이해수도 돌계단만 내려가면 코앞이 집(자취방)이라는 걸 핑계 삼아 거기 줄 서 있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어쩐지 비가 올 것 같은 냄새가 난다고 스치듯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질까 봐 걱정돼서 계속 줄을 서 있을까 돌아서 갈까를 망설였는데, 어깨 뒤쪽에서 커다란 하늘색 우산이 올라왔다. “같이 쓸래?” 동시에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낯선 공간감에 당황한 이해수가 재빠르게 뒤를 돌아다봤다. 아는 얼굴이었다. 




  이해수의 학과는 학관을 단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선후배들끼리 엄청 자주 마주치는 편이었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잘 생겨서가 아니었다. 소란스러워서였다. 어느 조직에나 한두 명쯤 있을 법한 스타일, 독보적인 친화력으로 주변 분위기를 장악하는 스타일이었다. 혼자 있을 때도 여럿이 어울려 다닐 때도 자기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안녕?′하는 해시태그를 붙이고 다니는 것 같은, 주변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그 인사에 반응하여 말을 걸고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들게 되는 사람 말이다. 이해수는 그를 멀찍이서 쳐다보며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맹세코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아참! 모두가 그를 ′원반 선배′라 불렀는데 이름 치고는 좀 특이해서 조교에게 ′원반이 저 선배 이름이냐′ 물어본 적은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영화배우 원빈을 반만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 댔다.                   




  워낙에 친화력이 좋으신 분이니까 이해수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그러자고(우산을 함께 쓰자고)했다. 솔직히 비도 오고 기분도 울적했는데 웃을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는 줄이 줄어드는 내내 조용했다. 어쩐지 어색했지만 이해수도 별 다른 말은 않고 조금씩 발걸음만 옮겼다. 드디어 돌계단을 타게 되었다. 이해수는 19칸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두 손으로 가방 끈을 꽉 붙잡으며 단전에 중심을 잡았다. 계단을 3칸쯤 내려왔을 때였다. 




  갑자기 선배가 ′우산을 건네기까지 숱하게 고민했으며 그것은 너에게 호감이 있어서라고′ 정확하게 말해줬다. 말하자면 사귀자는 고백이었다. 놀란 이해수는 살짝 휘청했지만 중심을 잃지는 않았다. 왜 여기서 그렇게 많은 커플이 탄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지점마다 말소리에 띠링띠링하는 종소리 효과가 더해져서 감정 선을 자극하는 영화 속 대사를 들을 때처럼 서서히 차오르는 느낌이 났다. 마지막 돌계단을 내려갔을 때 이해수는 선배가 내민 손을 잡았고, 그렇게 둘은 사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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