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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16. 2021

인도에서 어떻게 살았어?

인도에서 11년 동안 살았었다고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는 비슷한 질문이 있다. "인도? 거기에서 어떻게 살았어요?" '어떻게'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많은 의미를 나는 안다. "어떻게 살긴요.. 잘 살았죠!" 농담처럼 내가 말하는 '잘'이라는 단어에도, 그 행간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인도에서 어떻게 살았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려고 한다. '잘'이라는 단어를 풀어볼까 한다.

인도에서 나는 잘 살았다. 날씨는 덥고, 환경은 열악했지만 누구보다 재미있게 살았다.


2009년 당시에 인도라는 나라는 나에게는 세계사 책에서 나라였다. 활자 속에서만 존재하던 나라, 그곳에서 살기 위해 짐을 싸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보다, 아내로서의 위치보다,  엄마라는 자격이 가장 때였다. 생각의 중심은 딸들에게 집중될 때였다. 연년생 사춘기 딸들의 엄마였다.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짐을 싸야 했다.


남편 회사에서의 첫 번째 인도 주재원 발령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기대나 호기심보다 두려움의 색이 더 짙었다. 그럼에도 선뜻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딸들의 학교였다. 미국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학교 적응을 잘해주었다. 다양한 국적의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영어로 공부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학교 생활에 만족스러워했고,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면서 잘 지내주었다. 학교 밖은 열악했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는 학교는 아이들의 세계관을 넓히는 좋은 장소가 되어주었다. 딸들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나는 한국에서는 엄두도  던 학교 어머니회 임원도 2년씩이나 했다.


두 딸이 잘 지낸다는 것은 바로 내가 잘 지내는 일이었다. 졸업 후의 입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그러면 되었다. 엄마는 그거면 되었다.


"인도에서 어떻게 살았어?"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딸들이 잘 살아서 나도 잘 살았어!"이다.


한국에서 나는 종교가 없었다. 엄마는 교회 권사였지만 어릴 때 잠깐 가 본 교회는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엄마도 딸에게,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인도에 이사를 갔다. 회사 첫 주재원 가족이었고, 낯선 나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학교 개학도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해서 학부모와의 교제도 어려웠던 어느 날, 누가 한인교회 출석을 권했다. 심심했던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그 첫걸음이 인도에서의 내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원래가 봉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편이었는데 교회와 교회 밖의 봉사활동에 만족감이 컸다. 주일학교 교사로, 여전도회 임원으로 봉사했고, 교회에서의 선교사업과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일에 시간과 체력과 마음을 많이 할애했다. 신앙도 자랐고, 보람도 자랐다. 힘들고 열악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다.


"도에서 어떻게 살았어?" 그 두 번째 대답은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으로 잘 살았어"이다.


인도에서 살았던 11년 동안 나는 참 많은 여행을 했다. 13개 나라와 20개 이상의 인도 도시를 다녔다.


아이들 방학 때면 어디든 다녔다. 멀리 유럽, 이집트부터 가까운 스리랑카까지 해외를 고, 인도의 수많은 도시를 여행했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인도 여기저기를 많이도 다녔다. 야간열차도 고, 소형 비행기도 고, 배도 탔다. 5성급 호텔에서도 지내봤고, 바퀴벌레 득실거리는 시골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봤다. 인도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내가 사는 나라였다.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나라였다.


딸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미국으로, 한국으로 떠나고 난 뒤, 귀국할 때까지의 4년 동안은 인도 여행을 더 많이 했다. 귀국 결정이 되고 마지막 3주 정도는 아예 작정을 하고 남인도 끝에서 네팔까지 남편과 둘이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고생이 추억이 되었고, 그 시간은 두고두고 감성의 자산이 되었다.


"인도에서 어떻게 살았어?" 세 번째 대답은 "여행을 많이 하면서 잘 살았어"이다.


인도라는 나라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나라이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무지막지하게 덥고,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무질서하고, 종교가 너무 많고, 사람들은 게으르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그런 나라이다. 사실이다.

그런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일은 그리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너무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성향 자체가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불평, 불만 없이 잘 지내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의 틀을 조금 바꾸고 났더니 무척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었다. 


딸들이 잘 지내줘서, 신앙과 봉사활동으로,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 나라 인도에서 너무 잘 살다가 돌아왔다.

다시 가서 살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정해져 있다. "물론이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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