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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r 01. 2022

나에게 인도는 기억일까? 그리움일까?

10년도 더 살았던 인도라는 나라는 돌아온 한국에서의 내 생각을 크게 지배하지는 않는다. 귀국  차를 지나고 있서도 아니고, 한국생활이 바빠서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으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가 물어보면 늘 같은 대답을 했었다. 별로 생각은 안 난다고. 기억에서도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고.  

뉴스에서 인도 소식이 들리거나, 인도에서의 지인을 만나거나, 내 블로그 속의 인도 이야기가 눈에 띄면 그제야 생각이 나곤 한다.


그곳에서 살 때는 이럴 것이라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의 사오십대 10여 년을 낸 나라, 두 딸의 사춘기를 치열하게 보낸 나라이다. 그런 나라 인도를 세세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내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잊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자꾸만 잊히는 인도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그리움의 빈도와 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잦아지고 짙어지는 것만 같다.

내가 살던 동네 이름도, 자주 다니던 도로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동네의 골목 풍경과 냄새가 그립고, 그 도로를 지나다닐 때의   모습이 아른거릴 때가 많다. 무엇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궁금하다.


평소보다 진한 커피를 마시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잠들기는 글렀고, 반쯤 누워서 습관처럼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이곳저곳 폰 속의 세상을 뒤적이다가 내 블로그 속의 인도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던 그 나라, 그 도시, 그 동네를 밤새 돌아다녔다. 그곳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방안 공기를 가득 채웠고, 첸나이끈적한 더위가 그대로 느껴졌다. 도로 위의 소음이 귀를 찢었다.


골목길을 유유히 걸어 다니는 소들도, 빽빽 소음을 내며 달리는 노란색 오토릭샤도, 과일가게에 높이 쌓인 노란 망고 더미도, 담벼락의 숯불 다리미 손수레도, 트럭 짐칸에 빼곡히 앉은 인도 여자들도 보였다. 우기에 물에 잠긴 도로 위의 차들도 보였고, 알록달록 원색의 건물 앞으로 천연색 사리를 입은 여자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가족 같았던 존슨, 라주, 마하를 만났고, 옆집 인도 마담과 집주인 할아버지와 인사했다. 여름 기온에 추위에 떨며 졸고 있는 밤근무 중인 아파트 경비 아저씨, 세월아 네월아 비질을 하는 청소 아줌마, 한국말로 '오이'라고 말하는 야채가게 아저씨, 바짓단을 줄이고 있는 수선집 아저씨와도 눈인사를 나눴다.

로컬식당에서 맛살라 도사를 먹고, 동네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마셨다.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아이들 학교에 픽업을 가서 미국엄마와 프랑스식 인사도 나눴다.

내가 들고 간 것보다 더 큰 선물을 가난한 여학생들의 맑은 눈동자와 밝은 표정에서 받아 들었고, 한인교회 초등부실의 귀여운 아이들의 찬송가 소리도 들렸다.


11년 동안의 시간이 블로그를 클릭하는 순서대로 뒤죽박죽 연도는 섞였지만 내가 살던 인도를 마음껏 돌아다녔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밤을 꼴딱 새운 시간, 그만큼의 높이로 그리움이 쌓여버렸다.


보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나던 인도였다. 보고 나니 그리움이 몰려왔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그리움이 마음  구석 늘 웅크린 채로 숨어있었.

기억과 그리움은 상이한 것이었다. 뇌가 작용하는 기억과 가슴이 요동치는 그리움은 다른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옅어지는데 그리움은 짙어지고 다.  그리움의 많은 부분은 역시 그곳의 사람들 차지였다.


생활은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편했던 인도라는 나라였다. 이상하게 그 나라는 그랬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설명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인도가 그립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일 년 뒤에 더 그리울 것이 틀림없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강조했던 그 말속에는 그리움이 한가득이었다.


나에게 인도는 기억이 아니라 그리움이다. 뇌가 아니라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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