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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Dec 27. 2022

5월 9일, 12월 25일


숫자에, 날짜에 둔감한 편인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날이 있다.

2009년 5월 9일, 그리고 2019년 12월 25일.

해마다 5월 9일이 되면 또 한해 잘 살았다며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우리들만의 조촐한 파티를 열었었다. 딸들이 인도를 떠날 때까지 늘 하던 연례행사였다.

또 일 년, 잘 살아 준 딸들과 남편과 내가 기특해서 기념을 했었다.


인도는 그런 나라였다. 잘 살아줘서 기특했던 곳. 축하 파티가 필요했던 곳이었다.

그런 인도를 11년 만에 떠나왔다.


그 해 여름에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을 한 큰딸까지, 수년만에 내 나라에서 가족 모두가 모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서 빠듯하게 인도에서의 마지막 일정 마무리했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우리는 귀국을 했다.


그래서 매해 12월 25일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하필 날짜도 12월 25일이다. 기억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날짜이다.


5월 9일은 기념하며 살던 날짜였다면, 12월 25일은 그저 기억만 하게 되는 날짜이다.


살고 있던 인도는 내 나라가 아니어서 몸에 붙지 않았지만 여행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었고, 가끔 오던 한국은 생소함 때문에 어색할 때도 많았지만 편리함이 좋았었다.

불편했지만 흥미로웠던 인도의 기억은 차츰 잊히고, 편리하지만 그래서 덜 재미있는 한국은  이제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적응 능력이 탁월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중이다. 인도는 빠르게 잊히고 한국은 편하게 두 발을 딛고 있다.


벌써 귀국 3년이 지나고 있다. 잊고 있다가 12월 25일이 되니까 날 수를 세어보게 된다. 당분간 몇 해 동안 12월 25일은 그런 날이 될 것 같다. 기억하며 햇수를 세고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에 어느 해에, 그날이 별 날이 아니게 되고, 그렇게 잊게 되겠지만 아직은 12월 25일이 '그날'이라며 기억을 되짚게 된다.


그날이,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만 기억될 날이 오고야 말겠지?


인도 도착 첫 날 처음 먹은 음식 인도 망고(2009/05/09), 한국 도착 첫날 먹은 음식 삼겹살(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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