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새우를 물고기처럼 집에서 키운단다. '반려 새우'라는 것이 있단다.
독립을 한 큰딸이 새우를 키운다며 몇 달 전에동영상 하나를보여줬었다. 조그마한 수족관에 해초와 돌멩이들이 가득한데 레몬색의 예쁜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작은 수염과 발이 움직이는 것도 보였고 그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수족관 전기 코드가 빠져있어서 새우 몇 마리가 죽었다며 연락이 왔다. 출근할 때 꼭 확인을 하라고 했더니, "엄만 새우가 죽었다는데 같이 슬퍼해주진 않고.."라면서 새우의 죽음보다 자기 실수만 지적한다며 새우를 잃어서 슬픈 딸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엄마를 타박했다.
워낙 작은 새우인 데다가, 실물을 본 적이 없는 딸의 새우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 이천 원짜리 그 작은 새우가 죽은 게 그렇게도 슬픈 일일까? 의아했고, 그 슬픔에 공감이크게 안된 것도 사실이었다.
반려새우 '오렌지릴리'가 먹이 위에 앉아있다
그 새우는 번식력도 좋은 모양이었다. 이후에 보여 준 사진 속에 작고 투명한 것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수족관에 수초도, 돌멩이도 더 넣어줬다며 딸이 하도 자랑을 하길래그 새우들 실물을 보려고 딸 집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반려새우 수족관
자그마한 수족관에 새우들이 제법 많았다. 새로 사들인 주황색의 어미 새우들과갓 태어난,투명해서 눈에도 잘 안 보일 정도로 작은 새끼 새우 수십 마리가 귀엽게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새우를 보고 나니까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딸이 반려 새우에게 왜 그렇게 마음을 다 하는지 알 것 같았다.가족 여행을 가서도 새우 걱정을 그렇게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새도, 물고기도, 하물며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식물에게도 애정이 생기는데 새우인들오죽할까 싶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모두 같은 마음이 되는것이 인지상정이었다.
잠시 들여다보며 귀엽다, 예쁘다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내 눈앞에 그 새우, 딸이 죽고못 사는 그 반려 새우가 아른거리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