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딸 둘과 50대 엄마가 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일곱,스물여덟이되었고,쉰일곱이 되었다.딸들은 1996년, 97년생 전형적인 MZ세대들이고, 엄마는 67년생, 전두환을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린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대학을 다녔던 세대이다.
딸들이 사는 세상은 도서관에 파묻혀 스펙을 쌓으며 살아도 취업이 별따기보다 어려운 세상이고, 엄마가 살던 세상은 최루탄 연기 속에서 어영부영 학교를 다녔지만 취업 걱정은 거의 없던 세상이었다. 100군데 이력서를 내고 한 군데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하는 시대이고, 이력서 내는 곳은 웬만하면 갈 수 있던 시대였다.
다행히 내 딸들은 밥벌이는 하고 산다. 눈높이를 낮췄어도 만족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MZ세대 딸들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자기들 낳고 키우느라, 아빠 직장 따라서 움직이느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삶을 애달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갱년기의 터널을 힘겹게 지나고 있던 어느 날,"엄마는 과거를 돌아보면 뭐가 제일 아쉬워?" 작은 딸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일이 아쉽기는 해. 적성에도 맞았고, 재미있었고, 인정도 받았었는데.."별생각 없이 한 엄마의 대답이, 질문을 하니까 그 순간에 생각이 나서 한 대답이 딸들에게는 '엄마의 안타까운 삶'으로 각인이 되어 버렸다.
인도, 미국 그리고 한국, 수년동안 떨어져 살다가 다시 같이 살게 된 한국에서 마주 한전업주부 엄마가 딸들 눈에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해 본, 꿈을 제대로 펴지 못한 '엄마'로 비친 것 같았다.
아직은 미혼인 딸들이 자녀 양육과 직장일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몰라서 일 수도 있고, 그 나이의 여자들이 가지는 여성의 삶에 대한 기준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생 집안일만 하면서 산 엄마가 지들 눈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산 '여성'으로 비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소꿉놀이 이미지 사진
나는 29년 차 전업주부이다. 결혼을 하고 큰딸을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뒀으니 정확하게는 28년 차 전업주부이다.연년생 두 딸을 키우고, 주재원 남편을 따라서 해외에서 적응하며 사느라 바빴던 나는 한 번도 직장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런 삶이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직장을 안 다니고도 살림이 건사가 되어서 감사했고, 남는 에너지는 봉사활동에 쏟으며 살 수 있어서 만족했다.
서른 살, 첫딸을 낳으면서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그만둔 직장이었다. 아쉬웠지만 막상 내 품에 안긴 딸을 보니까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못 믿을 강한 모성애가 생겼다. 그렇게 28년이 지났다.
육아가 힘들어서 가끔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은 나를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두 딸을 누구에게 맡겼겠나 싶어서 금세 고개를 젓게 되었다.
그 누군가 내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은 그 일이 직업인데 나는 내 아이 키우고, 집안일을 한 주부가 내 직업이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도 큰 직업을 가졌었노라고.
나는 한 직장, 28년 근속 직원이다. 다른 직장을 다녔으면 퇴직을 할 나이가 가깝고 보니 나도 이제 주부 퇴직이 하고 싶어 졌다. 딸들은 경제적, 물리적 독립을 했으니 자녀 양육 일은 정년퇴직이 아니라 해고인 것 같고, 집안일은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다. 명예퇴직을 하기로 했다. 그 일은 이제 의무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물론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겠지만 그 일이 나에게 더 이상 직장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제는 최소한의 일만 하며 살 생각이다. 모두 하는 퇴직, 남편도 한 퇴직, 나도 하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는 집안일이 있다면 그 일은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취미일 것이다.
딸들아! 전업주부로 사는 삶도 괜찮았어.전업주부도 훌륭한 직업이었어. 그 괜찮은 직장, 이제 나도 퇴직할게.명예퇴직 위로금은 그냥 내 통장에서 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