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진 갤러리를 정리하다가 특이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많은 사진들 가운데 유독 사람의 뒷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의도하고 찍은 시진들이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사진 찍어 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좋은 구도와 예쁜 표정이 내 렌즈에 담기고 그 사진을 좋아해 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한때는 인물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늘 그랬듯이 꿈으로만 그치고 실행을 하지는 못했다. 화가가 되고 싶었고, 글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작가가 아니면 어떠랴! 항상 들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언제나 찍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인 세상이 되었고, SNS에 내가 찍은 사진을 불특정 다수가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하듯이 올려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사진작가들이 좋은 카메라로 전문적으로 찍은 작품 사진들도 좋지만 때로는 전문 기술 없이 아무렇게나 찍었지만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가 읽히면 그 사진이 좋을 때도 많다. '비정형'의자유로움과 무겁지 않은 해석으로오히려 더 큰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마치 유명 화가의 그림과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의 차이라고 할까? 어린 내 자식의 삐뚤삐뚤 그림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누구나에게 있지 않은가!
나는 여행을 다니면 늘 일행의 뒤를 따르곤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어 주고 싶기도 하고, 뒷모습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확한 표정이 보이는 앞모습보다 유추할 수 있는 뒷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인 것 같다.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움츠림, 손짓, 걸음걸이 등은 얼굴 표정을 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기분을 알기에 충분하고, 그 모습이 찍힌 사진은 그래서 이야기가 담긴 것 같아서 좋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진이 없었다면 십 수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기억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 사진을 보면서 그날을 추억하며 가슴 따뜻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명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 모년 모월 모일, 아빠 손을 잡은 큰딸의 뒷모습에서 호기심 가득 즐거운 표정이 보이고, 신발을 신는 작은딸의 뒷모습에서 전학 첫날의 기대감이 느껴지고, 인도에서 미국학교를 다니는 한국 딸들의 마음 상태가 읽힌다.
뉴욕까지 날아온 동생에게 졸업 작품을 구경시키는 언니의 기대감과 동생의 흐뭇함이 느껴지고, 동생 졸업 사진을 좀 더 예쁘게 찍어 주고 싶어 하는 언니의 마음이 땀에 젖은 바지 허리춤과 꿇은 무릎과 불편하게 말려있는 등에서 보인다.
세 부녀의 진지한 대화가 들리고, 네 자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고, 패밀리룩으로 맞춰 입은 인도 우리 집 운전기사 가족의 행복이 보이고, 과자가 먹고 싶은 인도 아이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사진 속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리고, 마음 상태가 읽힌다. 그래서 나는 뒷모습 사진 찍기를, 찍어 주기를 좋아한다. 특히, 그렇게 찍은 내 가족사진은 두고두고 봐도 재미있고 따뜻하다.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는 책을 또 펼치듯이 가족의 뒷모습 사진을 또 찾아본다.초점이 안 맞고, 구도가 별로여도 보는 순간 감동을 받게 되는, 나에게는 최고의 사진들이다.
얼굴 표정이 보이는 시진은 바로바로 보고 넘길 수 있는데, 뒷모습이 찍힌 사진은 한동안 더 바라보게 된다. 이야기가 보여서 그 이야기를 읽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뒷모습 사진을 좋아하고, 뒷모습 찍어 주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