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y 13. 2023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려다가 사람들이 제법 많은 것 같아서 티켓팅을 미리 하기 위해 버스표 무인 자판기 앞으로 갔다.
백인여자가 티켓팅 중이었는데 뒤에서도 얼핏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이 삼송(samsong)을 터치하고 있었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더 이상 진행이 안 되는 화면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삼송? 외국인이, 그것도 누가 봐도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이가 삼송역을 간다니 의아했다. 그래서 한국 아줌마의 오지랖과 친절, 그 중간쯤의 어떤 마음이 발동했다.
"너는 어디를 가려고 하니? 삼성역에 가려는 것이면 거기 Samsong이 아니고 여기 Samsung을 터치해야 한다. 비슷한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이다" 짧은 영어로 설명을 했다.
고맙다며 다시 삼성역에 터치를 하려던 그때, 그 백인 여자가 떠듬떠듬 급한 듯이 영어로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잘 알아듣지 못하겠는 영어였다. 손짓과 표정과 영어 단어 몇 개를 사용하는데,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버스가 한대 정차해 있었다. 삼성역으로 가는 공항버스였다.
티켓 없이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고 바로 버스를 타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게 유추가 되었다.
"그래, 카드로 지불해도 된다. 얼른 버스를 타라" 그녀보다는 오히려 조금 나은 영어로 말을 건넸고, 그녀는 다급하게 "땡큐!"를 등 뒤에 남기며 버스에 올랐다.
백인이라고 모두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나의 순간적인 선입견에 어이가 없어서 혼자 피식 웃으며, 나도 내 목적지까지 승차권을 예매했다. 당황해서 한글이 아닌 그녀가 띄워 둔 영어자막 그대로 화면을 터치해 나갔다.
그랬더니 이번엔 내 뒤에 줄 서있던 한국인처럼 보이던 동양인 외국인 여성이 유창한 영어로(유창하다는 것은 내 귀에 너무 빠른 영어를 말한다) 뭐라고 얘기를 했다.
'버스 스탑, 수서 스테이션'이라는 익숙한 단어만 들렸다. "수서?" "나도 그곳에 간다. 티켓팅 후에 나와 같이 가자"
내 영어 발음과 문장 서술을 들어보면 영어권 사람이 아닌 사실을 알았을 텐데, 영어자막으로 버스표 예매를 하고 있어서 내가 외국인이라고 오해를 한 듯했다. 수서역으로 가는 리무진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면서 그 한국인처럼 보이는 한국인이 아닌 여자가 내 귀에는 너무 빠른 그 유창한 영어로 자꾸 얘기를 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미안한데 나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그제야 그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뭔가를 빠르게 말하고 고맙다고 하고 더 이상 말을 아꼈다.
나는 백인 여자를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영어를 잘하는 동양인을 한국인으로 오해했다면, 그 동양인 외국인은 내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여행객으로 오해를 하는 물고 물리는 일이 그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
백인은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한국에서 보는 동양인은 한국인일 것이라는, 그리고 영어 자막을 사용하면 관광객일 것이라는 우리의 시선과 편견과 착각이 국제공항 공항버스표 무인 자판기 앞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내 마음의 고정된 관념과 관습이 더 큰 실수와 실례를 범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졌던가? 그 수많은 선입견과 편견이 자칫 차별로 이어지지나 않았을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