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좋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던 남편의 바람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던 나의 소망과 2층집에 대한 딸들의 환상을 얼떨결에 이룰 수 있게 된 날이다.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내가 쉰일곱이 되어서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살게 되었다. 살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집 지을 땅을 샀다고 했다.
지하철역까지 도보가 가능한 거리인데 산에 둘러싸인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개천가 땅이라며 자랑을 했다.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그곳에 바람도 쐴 겸, 주변 맛집도 갈 겸, 남편과 자주 다녔었다. 인적이라고는 없었던 산속에 하나둘 집들이 들어서고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을 꾸준히 구경 다녔었다.
땅 주인의 집 짓는 과정을 구경하러 다니다 보니 내 집도 아닌데 정이 들어버렸고, 세를 주려고 짓는다는 아랫집에 우리가 들어와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그렇게 하자가 되어버렸다.
시공업자를 잘 못 만나서 다른 집보다 건축기간은 길었지만 누구나 지나가다가 쳐다보는 예쁜 집이 완성되었다.
왜가리, 청둥오리가 코앞에 날아다니고, 개구리 소리가 자장가이고, 새소리에 잠을 깬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는 2층 테라스에 앉아서 하염없이 개울물 소리를 듣게 되고, 화창한 낮에는 눈 덮인 히말라야로 착각하게 되는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이 정화되고, 읽던 책이 꿀처럼 달아진다. 개울변 산책로의 사람 구경, 반려견 구경도 재미있고, 입은 채로 내려가서 나도 그들 뒤를 걷게도 된다.하염없이 걷게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공기가 깨끗하다 못해 달콤한이곳에서 지낸 지 보름이 지나고 있다.
침대와 소파가 서운해할 정도로 멀리하게 되었고, 많이 움직이게 되었고, 잘 먹게 되었고, 잘 자게 되었다. 덕분에 달고 살던 만성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재취업으로 이 집은 잠시 두고 다시 인도에서 몇 년을 살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이 동네에 있어서 가끔 들르게 될 한국이 한층 평온해질 것 같다. 인도 대도시의 소음과 공해와 혼잡함을 잠시 희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도 곧 남편이 구해놓은 인도 집으로 가서 살게 되겠지만, 그 나라에서조차 아파트에서 살게 되겠지만, 우리나라에 우리 가족이 살고 싶었던 집이 있어서 편한 마음으로 인도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봄부터는 제대로 텃밭의 채소와 과실수를 길러볼 생각이다. 4월부터 7월까지는 한국에서, 이 집에서 그렇게 지내기로 했다.인도의 아파트에서 8개월을 살고, 한국의 주택에서 4개월을 살 생각이다. 인도생활 11년 동안에도 못해 본 주택살이를 이제 한국에서 하게 되었다.
40년 만의 주택살이, 현재까지 만족이다. 2층 계단이 힘들어질 나이가 되면 다시 아파트로 갈 계획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그러고 싶지가 않을 정도이다.
평온하고 좋다. 어린 시절의 마당 있던 우리 집이 늘 그리웠는데 그 그리움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고 있다. '이런 게 집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지않을 남편의 또 한 번의 퇴직이 있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주택생활을 누리며 살 생각이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집주인이 살고 싶을 때까지 살아도 된다고 한다. 그 집주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집수리를 해주고, 내가 원하는 나무도 심어주고, 내 의견을 반영하면서 신경을 써준다.
그 좋은 집주인은 바로 내 동생이다. 어릴 때 콧물을 닦아주며 데리고 다니던 그 막내 남동생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용기를 내지 못했던 외곽의 주택살이를 동생 덕분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추나무, 뽕나무를 심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마당이 떠올랐다. 포도나무, 배나무, 감나무가 심긴 그 마당 생각이 났다.
40년 만에 살아보는 주택은 40년 전까지 살았던 그 집과 그때의 좋았던 기억을 되돌려주었다. 집이 주는 평온함, 따뜻함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오늘도 임시로 심어 놓은 보리수나무, 뽕나무, 대추나무, 목련, 참나무에 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TV를 켜고, 스마트폰부터 열던 아파트에서의 아침 시간과는 사뭇 달라졌다.
도심 외곽의 주택살이, 현재까지 대 만족이다. 고작 15일이지만 최소 15년은 만족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