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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08. 2023

버려진 야생화가 보란 듯이 꽃을 피웠다.

주택살이 즐거움의 최고는 단연코 화단에 화초를 기르고,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일이리라.

아파트에서는 작은 화분에 가둬져서 볕도 마음껏 못 쬐고, 물도 충분히 못 먹고, 더 크고 싶어도 화분 크기에 맞춰서 자라야만 했던 화초들이 주택 마당에서는 볕도 충분히, 물도 듬뿍, 바람도 마음껏, 뿌리도 내려가고 싶은 곳까지 충분히,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나왔고, 화초들은 화분에서 나왔다. 나도 자유를 얻었고, 화초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눈만 뜨면 살펴보던 내 '반려식물'들은 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영혼까지도 자유로워진 '식집사'인 나 만큼이나 좋아 보였다.


아직 꽃이 피기 전의 초록이들을 겨울을 나는 야생화 위주로 사서 화단에  심었다. 충분히 볕도 쬐고, 배불리 물도 마시며 건강하게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초록이들이 건강하고 자유롭게 꽃밭에서 자라는 동안 장마가 지나갔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몇몇 화초들이 줄기가 꺾이고, 물에 잠겨서 죽어가는 것이 보였다. 시들시들 줄기가 검게 변했고, 흙탕물에 잎들도 지저분해져서 버리려던 그 꽃을 텃밭 구역 구석, 눈에 안 띄는 곳에 심어두었다. 심었다기보다 대충 흙 위에 얹어두었다. 살 수 있을 상태가 아니었다.


내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튼튼하고 예쁘게 꽃을 피운 잘 자란 꽃밭의 꽃들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을 동안, 눈에 안 띄는 구석에서 에메랄드그린에 가려서 볕도 충분이 못 쬐고, 물도 충분히 못 먹었을 그 야생화가 어느 날 보라색 꽃 얼굴을 내밀며 건재함을 자랑했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화초가 빽빽한 나무 틈에 숨어서 보이지도 않다가 오히려 다른 것들보다 키도 더 크고, 줄기도 더 굵게 자라서 예쁜 꽃까지 피우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로움, 야생화의 생명력을 눈으로 보면서 포기하지 않은 힘을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용기도 작아지고, 도전정신도 줄어들고, 편하고 안전한 것만 쫒게 되었는데 버려진 야생화의 꺾이지 않은 생명력을 보면서 아직 50대일 뿐인데 너무 안이하게만 살려고 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보란 듯이 살아난 야생화 한 송이가 나의 20대의 열정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던 내 20대가 그리웠고,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다그쳤다.


자연에서 또 배운다.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신조어가 확 와닿았다.


마침 곧 인도에 가게 되었다. 내 50대 후반은 용기 있게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언젠가 다시 귀국을 해서 후회하지 않을 시간들을 인도에서 보내고 오자는 다짐을 하게 했다. 자유롭게 도전해 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엄마, 아내의 모습이 아닌 오로지 '내'가 되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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