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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09. 2023

주택에 살아요. 시골에 사는 건 아니구요.

서울을 떠나서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고 말했더니, 텃밭을 가꿀 생각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골마을을 연상했다. 시골 산속 어디의 전원주택쯤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가 시골은 아니다. 강남 쪽에서 보면 아주 먼 어디 시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3호선 지하철역이 도보거리인 경기도 어디쯤이다.

숨은 좀 차지만 지하철역에서 나지막한 언덕 하나 넘으면 도시의 소리와 냄새, 번잡함이 차단된 동네가 나타난다.

공기와 풍경은 시골의 그것처럼 깨끗하고 어디를 봐도 초록초록 산들과 개울이지만 집 앞에 편의점과 세탁소, 깨끗한 식당들과 유명 카페 브랜치도 있는, 도시 문화는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동네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있고 4층짜리 아파트도 있다. 대형 쇼핑몰도 운동삼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고, 산책로를 따라서 걸으면 복작복작 상권도 근처에 있다.


"나 시골공기 마시러 가도 돼?"라고 묻는 지인들이 꽤 있다. "시골 공기는 마실 수 있어, 그런데 시골은 아니야. 놀다가 쇼핑하고 가"라고 대답을 한다.


나는 주택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심지어 인도에서조차 10년 넘게 살았던 아파트 생활 40년을 접고 산과 개천 사이에 지어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동네의 복층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2층 테라스에 앉으면 개천의 요란한 물소리 들으며 하염없이 물멍을 할 수 있고, 주방 문을 열면 넓은 데크 앞에 두어 평 화단 겸 텃밭이 있는 그런 곳이다.


나는 주택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지 시골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골, 시골 노래를 부르던 도시촌놈 남편의 바람과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절충 지역이 운 좋게도 우리 앞에 나타났다.

좋은 동네에 예쁜 주택을 지은 동생 덕분에 시골 공기는 마시되 도시의 편리함은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주택살이 중이다.


서울 아파트의 갑갑함을 탈출했다. 결정을 내렸더니 삶이 달라졌다.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었고, 작은 화단 가꾸는 재미에 빠졌다.

유리창으로 가로막힌 나무와 하늘이 아닌, 슬리퍼 신고 나와서 데크에 앉으면 산과 하늘을 오감으로 만날 수 있고, 입은 채로 동네 한 바퀴 걸으면 자연 속의 산책이 된다.


사는 곳이 서울 아파트에서 외곽의 주택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무척이나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층간소음, 주차문제 스트레스가 사라졌고, 자동차와 배달오토바이의 소음에서 벗어났다.


나는 주택살이 중이다. 시골이면서 도시인 동네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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