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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r 27. 2024

한국 우리 집 화단의 하얀 목련 꽃망울

아이들 어렸을 때, 슈퍼에 제품으로 나와있는 팝콘용 옥수수를 사다가 팝콘을 만들어 먹곤 했다. 간편하게 전자레인지를 사용해도 되었지만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하얗게 터지는 팝콘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보려고 일부러 가스불에 튀기곤 다.


작은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한국 우리 집 화단의 목련나무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아이들과 재미있게 팝콘을 튀겨먹던 내 30대 중후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했다. 마치 아직은 껍질에 쌓인 부분이 많은, 조금만 더 웍이 불에 달면 금방이라도 하얗게 터질 것만 같은 팝콘을 보는 듯했다.

목련꽃망울이 팝콘으로, 팝콘이 내 30대 중후반으로, 순간적으로  빠르게 생각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 심장을 건드렸다.



작년 5월에 서울 아파트에서 경기도 외곽의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퇴직한 남편과 작은 텃밭도 가꾸고, 꽃나무도 심으며 자연에서 힐링하는 삶을 계획했었다.

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3개월 만에 인도에 와야 했다. 이사 결정이 먼저였고, 갑자기 남편의 재취업과 인도 법인 발령이 결정된 것이었다.


인도에 가는 것이 나쁘진 않았지만 딱 하나, 막 가꾸기 시작한 내 미니 정원을 두고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비록 인도에 갈 날은 정해져 있었지만 3개월 동안 화단 가꾸는 재미로 살았었다.


그때 심은 나무 중의 하나가 목련나무였다. 가장 먼저 심은 나무가 목련나무였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첫 해에는 꽃이 안 필 수도 있다고 해서 사실 올해는 기대를 안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너무나 기특하게 내 목련 나무는 하얀 꽃망울을 많이도 맺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주택으로 이사 가기 바로 전에 살았던 아파트의 주방 창문 너머에 큰 목련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겨울 내내 쓸쓸한 가지만 보이다가 아직은 찬바람이 부는 3월이 되면, 요리를 하면서 매일 보는 내가 알아채지도 못한 어느 순간에 하얀 꽃망울을 맺곤 했다. 또 어느 순간에 하얗고 눈부신 큰 꽃을 활짝 피웠다가, 또 어느 순간에 덧없이 꽃잎을 모두 떨어뜨리곤 했다.


너무 짧게 잠깐만 봐서인지 아파트 정원의 그 하얀 목련꽃은 내 뇌리와 정서에 강하게 남게 되었다.

내 것도 아닌 그 목련나무도 그렇게 좋았는데 이제 내 것인 목련은 얼마나 더 좋겠는가 말이다.


나무는 서너 그루 정도만 심을 수 있는 그리 넓지 않은 화단에 그래서 나의 선택은 목련이었고, 남편의 로망은 대추나무였다. 나는 아파트에서 정이 든, 너무 잠깐만 봐서 아쉬웠던 우아한 목련, 남편은 어릴 적 앞마당에서 맛있게 따 먹던 추억의 대추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화단의 반은 꽃밭으로, 반은 텃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꽃밭 구역엔 목련과 보리수나무를, 텃밭 영역에는 대추나무와 뽕나무를 심었다. 뽕나무는 내 어릴 적 추억의 나무이다. 뒷산에 뽕나무가 있어서 오디를 많이도 따 먹었었다. 손가락과 입 주변이 까맣게 물든 모습을 보며 친구들과 깔깔대며 따먹던 오디였다. 보리수나무는 화원에 갔다가 빨간 열매가 체리처럼 조롱조롱 달려있는 모습이 예뻐서 즉흥으로 사서 심은 것이다.


그렇게 네 그루의 나무가 우리 집 미니 정원에 심겼는데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제일 먼저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달린 것이다. 우리 집에서 달린 첫 꽃망울이다.



우리 집 작은 화단에 심어 둔 목련나무의 꽃망울은 마치 터지기 일보작전의 팝콘 마냥 신기하다. 신기함을 넘어서 콩닥콩닥 감동이다.


목련꽃망울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희귀 식물도 아니고 사진 속의 하얗고 귀엽고 탐스러운 꽃망울이 어찌해서 내 마음을 이리도 콩닥거리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단지 어렸던 딸들과, 젊었던 내가 생각나는 팝콘이 연상된 때문만은 아니다.


금 나는 인도에 있다. 일 년 내내 한여름인 남인도 첸나이 열대지역에 살고 있다.


이 도시는 지금 한창 예열 중이다. 4월부터는 40도 가까이, 그 이상 기온이 오를 예정이다.

원래도 더운데 더 더워지고 있으니 몸이 반응을 하는 중이다. 쉽게 지치고, 에어컨을 안 켜면 생활하기가 힘들다. 더위에 지쳐서 의욕이 없어지려는 때이다.


이때 한국에서 날아온 우리 집 화단에, 내가 심어 놓은 목련 나무에, 조롱조롱 매달린 하얗고 귀여운 목련꽃망울 사진에 내 심장이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한국이, 한국의 봄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꽃망울이 맺힌 지 이틀 만에 이미 목련꽃이 피고 있다. 4월 20일 이후에 한국에 갈 예정인 나를 절대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심은 내 목련나무의 첫 꽃을 직관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나는 맛있는 인도 망고를 먹으며 달래 볼 생각이다.

한국의 내 목련꽃이냐, 맛있는 인도 망고냐의 선택길에서 올해는 망고를 선택했지만, 내년에는 한국의 내 목련꽃을 선택해야겠다.


아쉽다. 내 첫 목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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