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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pr 08. 2024

우아하게 떨어지는 목련꽃잎 같기를


떠나와 있는 한국 리 집 화단의 목련나무에 꽃망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화단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꽃나무를 심는 것이었고, 꽃나무 중에서도 하얀 목련나무는 꼭 심고 싶은 수종이었다.


내 키보다 낮은 작은 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에,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내 눈과 마주치는 곳에, 1층 데크에 앉아서 하늘을 우러르저절로 보이는 자리에 목련 나무를 심었다.

그때는 5월, 이미 꽃은 지고 난 뒤였지 멋스럽게 뻗은 가지에 초록의 두껍고 넓은 잎들이 적당하게 달려 있어서 나무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만족스러웠다.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었다.


내 목련 나무가 계절이 한 바퀴 돌 동안에 새 땅에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살아 준 것이 너무 고맙고 안심이 되었다.

목련나무를 심어놓고 3개월 만에 떠나 온 인도에서 나는 다음 해의 봄을 맞았다. 옮겨 심은 그 나무가 첫해에도 꽃을 피워낼 몹시 궁금했다.

집 근처의 개천변과 산에 봄꽃들이 천지로 널린 때문인지 엄마의 목련나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딸에게 2~3일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고 숙제를 냈다.


3월 23일

주방 앞 데크의 나무 의자에 앉아서 목련나무를 올려다 때마다 나무가 참 예쁘다고 하도 말을 해놔서 딸도 엄마의 사진요청이 어떤 마음인지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목련꽃망울이 맺힌 날로부터 여러 날 동안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다.


3월 25일


카톡에 올라온 사진을 요리조리 확대해 가면서 유심히 관찰하던 재미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딸이 전송한 꽃 사진을 보는 감격은 단 열흘 만에 끝이나 버렸다. 내 목련 나무의 첫 꽃망울은 단 두 주만에 모두 땅에 떨어진 꽃잎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의 나무들을 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 목련을 보고는 이렇게 짧게 폈다가 지는 꽃인지 새삼스러웠다.



겨우 열흘이었다.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3월 27일


화원에서 옮겨다 심은 다음 해에 내 목련나무는 잘 살아준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고맙게도 크고 아름다운 순백의 꽃을 선물해 주었다.


메마르고 차가운 가지 안에 겨울 내내 생명을 품었다가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 봄의 기운을 내뿜는 그 어느 날에, 보일락 말락 작은 꽃순이 올라오나 싶더니 금세 올망진 꽃망울이 달렸고, 그 꽃망울은 누구도 눈치 못 챈 어느 순간에 전방지축 작은 꽃잎을 내어놓았고, 어느새 옹골찬 야무진 꽃을 피웠다. 그리고 마침내 파란 하늘 속으로 풍덩, 아름다운 하얀 꽃을 멋지게 활짝 피웠다.


3월 29일


감탄하며 감상할 시간도 잠시, 한국의 4월 날씨가 유독 변덕스러웠다더니 그 꽃은 만개한 지 하루 만에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딸이 보내 준 사진 속에는 커다란 하얀 꽃잎이, 생명을 다한 큰 꽃잎이 우아하게 살포시 한 장 한 장 바닥에 떨어지 있었다.


짧았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웠던 열흘이었다.


4월 2일


쉰 후반의 나는 부디 더 옹골차고 여문 꽃으로 피어있다가 아름답게 만개한 꽃으로 앞으로 다가 올 노년의 시간을 살고 싶다. 그리하여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우아했으면 좋겠다.

꽃잎이 떨어지기 바로 직전이 가장 크고 아름답고, 우아했던 목련 꽃잎처럼 내 노년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아한 내 노년의 만개한 꽃을 위해서 내 남은 중년의 시간은 그래서 더 여물어져야만 할 것 같다.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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