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따라서 인도에 가기 전부터 나는 인도에서 반년, 한국에서 반년을 살기로 선언을 했고, 남편도반대는 하지 않았다. 4월부터 시작되는 인도 첸나이의 체감온도 4,50도 무더운 기온 속에서 내가 굳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서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 더위에 주말조차도 나 혼자서 지낼 일이 마음 쓰였던 남편의 이른 비행기 티켓팅으로 나는 4월 중순부터 한국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작은 정원이 있는 2층 주택으로 이사 나온 지 3개월 만에 주재원 재발령으로 남편이 먼저 가있는인도에 가게 되었다.
분홍, 빨강 장미꽃이 피었고, 수북하게 보라와 하얀색 수국이 피었고, 모내기를 해 놓은 듯한 맥문동 묘목과 핑크 패랭이들이 귀엽게 핀 내 정원을 두고, 빨간 보리수 열매, 까만 오디를 따 먹고 한여름에 나는 인도로 떠났다.
올해 3월 초, 내 정원 모습.⬇️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가끔 딸이 보여주는 가을, 겨울의 정원을 사진으로만 보다가 봄이 되어서 내 정원과 마주했다. 인도에서 너무 그리웠고, 염려되었던 내 정원과의 만남은두 딸과의 만남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반가웠다.
한 달 전 3월에 사진으로 본 정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명체라고는 없는 듯이 황량하고 건조하고 마른땅이었던 내 정원에 초록초록 생명체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심은 나무들과 꽃들이 대문을 여는 나를 반겼다. ⬇️
대문밖의 철쭉들은 분홍 얼굴을 들이밀면서 집에 돌아온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내 정원의 안위를 말해주려는 듯이 나를 안심시켰다.
이미 꽃을 떨군 목련나무는 커다란 초록잎이 무성하게 가득했고, 노란 꽃을 매달고 곧 초록의 열매를 맺을 준비를 보리수나무는 하고 있었고, 뽕나무는 손바닥만 한 이파리들 사이에 커다란 초록 오디들을 많이도 숨기고 있었고, 가을 열매 대추나무는 조금 늦게 그제야 연두색 작은 잎들을 가지에 붙이고 있었다.
장미나무에도 새 잎들이 돋았고, 성격 급한 놈은 이미 작은 꽃봉오리들을 달고 있었다. 초록잎이 가득한 수국은 예쁜 꽃이 필 여름을 기대하게 했다.
겨울을 잘 이겨낸 철쭉, 목련, 보리수, 대추, 뽕, 장미나무가 이렇게 튼실하고 기특하게 봄을 맞고 있었다. ⬇️
무엇보다 신기한 놈은 패랭이들이었다. 작고 여린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작년보다 더 크고 풍성한 새 줄기에 더 많은 꽃봉오리를 달고 있었고, 간간이 진분홍꽃들이 펴있는데 너무 기특하고 예쁘고 귀여웠다.
이렇게 연하고 약해 보이는 패랭이가 겨울을 이기고 화려하고 펴있었다.⬇️
내 3평 정원의 봄은 겨울 동안의 휑한 모습에서는 감히 기대조차도 못했던 기특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다는 지난겨울이었고, 늦봄에 한국에 가면 정원을 처음부터 다시 가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나무, 내 꽃들은 내 염려를 뒤로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예쁘게 새로운 봄을 맞고 있었다.
나무와 꽃들은 포기를 안 하고 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포기를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자연은 그렇게 나약하지가 않았다. 나만 약한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에게 내 작은 3평 정원의 나무와 화초들이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도 포기라는 것은 하지 않는다고, 꽁꽁 언 땅을 견뎠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냈고, 건조한 뿌리로도 잘 참고 살아남았다며 자연이 나에게 교훈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직 예순도 안되었는데 꽁꽁 언 땅 속에 나를 가두고, 찬 바람은 피하려고만 하고, 자꾸 나이를 들먹이며 도전보다는 포기를 먼저 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게 했다.
마치 죽은 것만 같았던 겨울의 나무와 화초들은 당당히 살아남아서 더 크고, 화려하고, 예쁜 나뭇잎과 꽃과 열매를 달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인도에서도 내 환경만 탓하며 남편 따라다니느라, 딸들 키우느라 나는 내 꿈을 펼치지 못했다며 핑계만 대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백세 시대에 내 나이 이제 겨우 쉰여덟이다. 아니, 쉰여섯이다. 6할도 못 살고 있다. 그런데도 미래보다는 과거에 갇혀있을 때가 많다. 결혼 전의 내 20대만 그리워하며 그때의 예뻤고, 건강했고, 진취적이었던 나를 자주 떠올리며 현재의 나를 비관할 때가 많다. 그때의 나와 똑 닮은 두 딸을 보며 열심히 꿈을 펼치는 딸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내 작은 정원이 위로를 하고 있다.
내 3평 정원을 가꾸며 나는 내 미래를 꿈꾼다. 척박한 겨울을 이겨낸 나무와 화초를 보며 내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현재 내 3평 정원 모습(큰 배롱나무를 심었고, 고추, 상추도 기르는 중이다.)⬇️
한국에 온 지 두 주가 지났다.
장미는 곧 꽃봉오리를 터뜨릴 것 같고, 오디는 더 굵어졌고, 병충해에 살아남은 보리수 열매가 몇 개 달렸고, 패랭이들은 한껏 가득 펴있다.
큰 '배롱나무'를 심었고, 작은 '패랭이'들을 더 심었고, '큰꽃으아리'도 한그루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