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초, 잠시 들른 한국에서 요리를 하고 남은 대파가 있어서 인도에 가기 전에 내 3평 정원의 텃밭 구역 구석에 뿌리 3개를 심어 놓았었다. 막 초록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나는 인도로 떠났고, 어느 해보다 추웠다는 한국의 겨울이 지나고 4월 중순경에 다시 한국에 다니러 왔다.
내 3평 정원은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은 초록 새싹들이 예쁘게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유독 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당연히 겨울 땅속에서 얼어서 죽었을 줄 알았던 대파가 내가 뿌리를 심어놓았던 그 자리에 대파 모양을 하고 당당히 서 있었다.
겨울에 대파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생각해 보니 인도에서 한국의 시골살이 유튜브를 본 적이 있었다. 한국에 가면 내 작은 정원을 다시 가꿀 생각에 정원 가꾸기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까 알고리즘이 비슷한 영상을 많이 띄워줬는데 텃밭 가꾸는 영상도 그래서 보게 되었었다.
봄이 되어서 텃밭 땅을 고르려고 나갔다가 겨울을 지내고 싹을 틔운 대파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며 대파 뿌리가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다시 살 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었다.
그래서 내 텃밭의 대파도 분명히 겨울을 이겨낸 대파임을 확신했다.
어찌나 기특한 지 보고 또보며 물도 자주 주며 살피던 중에 한 개는 잘라서 계란찜에 넣어먹고, 두 개는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상추 모종들 옆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2주가 지난 오늘, 비가 제법 내린 뒤에 화창하게 개인 오늘, 대파 한 개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파 꽃이라니..
이렇게 귀엽고 예쁜 꽃이라니..
이토록 신비한 대파 꽃이라니..
국기봉처럼 봉긋하게 초록 대파 끝에 하얗게 달린 만개한 대파 꽃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막 피어나는 대파 꽃을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귀엽고, 예쁘고, 신기하고, 기특해서 한참을 관찰했다.
음식에 넣지 않고, 관상용으로 그대로 두기를 잘한 것 같다며 내일은 활짝 핀 대파 꽃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대파 농사를 짓는 분들이 보면 얼마나 웃길 노릇일까마는 도시에서만 자란 내 눈엔 대파 꽃이 피는 과정이 너무 신비해서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도 그만이라는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보다 꽁꽁 언 겨울 땅속에서도 살아남은 기특한 그 대파가 피워낸 꽃이 아닌가 말이다. 겨울에도 살아남은 내 텃밭의 대파가 꽃까지 피워냈으니 나에겐 그 하나가 다른 많은 큰 밭의 대파들보다 귀하고 소중하다.
패랭이, 장미 등등 분홍계열 꽃들만 가득한 내 3평 미니 정원에 하얗게 우뚝 솟은 대파 꽃은 단연 돋보이고 특별한 꽃이다.
대파 한 단을 사서 3등분으로 잘라서 비닐팩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고 뿌리는 또 텃밭에 심어놓았다. 며칠 비가 오더니 초록 싹이 쑥 올라왔다.
파들이 자라면 가장 튼실한 놈은 꽃이 필 때까지 또 기다려 볼 참이다. 먹는 대파도 맛있지만 보는 대파도 먹는 것 이상으로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파 뿌리를 심었더니 이렇게 초록싹이 올라왔다.
아파트를 벗어나서 처음 가져 본 내 정원은 비록 3평의 작은 정원이지만 그 속에는 신비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내 정원의 꽃들과 나무와 채소들을 살핀다. 남들은 눈치 못 채는 작은 변화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다.자연의 힘과 생명력이 신비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