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라는기안84의 인도바라나시 여행에 푹 빠져서 수없이 방영되는 재방송을 보고 보고 또 본다.
좋았던 여행지는 또 가고 싶고,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은 또 보게 되는 두 가지의 요건이 딱 맞아떨어졌다.
2019년 12월, 남편의 인도 11년 동안의 주재원 생활을 접고 귀국을 한 달 앞둔 즈음이었다. 인도 남쪽 끝, 땅끝마을 '깐얀꾸마리'부터 북쪽 끝 인도의 지붕 '히말라야'까지 다녀보고 귀국하자는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3주간의 인도 배낭여행을 감행했었다.
상대적으로 덜 바빴던 내가 여행 일정을 짰고, 남편이 바라나시는 꼭 가자는 의견을 뒤늦게 피력을 했다.
지저분하고, 공기도 안 좋고,혼잡하고,시체 타는 냄새도 난다는데 굳이 그곳을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던 바라나시는 내 취향의 여행지는 아니었다. 비위도 좋고, 음식도 안 가리고, 적응력도 강해서 인도 어디를 가도 불편함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바라나시는 내키지 않는 여행지였다.
그래도 긴 세월 인도에서 고생한 남편이 꼭 가고 싶다고 하니 가보기로 결정을 했다. 일정이 빠듯해서 '우다이푸르'를 빼고, 바라나시를 넣었다. 그렇게 가게 된 '바라나시'였다.
남인도 4개 도시를 찍고, 북인도 3개도시를 거쳐서, 네팔의 카트만두를 가기 전에 들른 바라나시였다.
바라나시 공항에서갠지스강 근처의 호텔까지 가는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혼잡했고, 시끄러웠다. 세상 모든 힌두교인들은 그곳에 모두 모인 듯했고, 세상 모든 경적소리는 다 듣는 듯했다.
근처에 갈수록 매연이 심해서 닫힌 차창안으로도 연기가들어와서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화장터에서 날아오는 연기였다는 것을 다음날 밤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첫인상부터 강렬했던 바라나시에서의 2박 2일은 11년 동안 살았던 남인도와 그간 여행 다녔던 인도의 수많은 도시보다 인도다운 도시였다.
귀국을 했고, 3년 6개월이 지났다. 한국 생활에 빠져서 잊고 있던 바라나시가, 갠지스 강이 기안84의 여행을 쫒으며 다시 기억이 났다. 슬금슬금 떠오른 것이 아니라 심장이 쿵쾅거리며 강하고 빠르게 기억이 났다.
기안84가 걷는 갠지스강변을따라서내 기억도 함께 걸어가고있었다.
TV 화면 밖으로 그곳의 모습이 소음과 냄새도 함께 고스란히전해져 왔다.
소똥, 개똥을 피하며 걷던 골목길도, 사람들에 껴서 밀리다시피 걸어 다녔던 대로변도, 시끄러운 경적소리도, 걸으며 사 먹었던 길거리 음식도, 흔들흔들, 느릿느릿, 인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이 높은 시야의 생눈으로 내려다보며 구경하던 자전거릭샤 위에서의 시간들도, 배를 타고 건너간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저녁노을도, 결혼식을 하고 갠지스를 찾은 가족도, 수천 명이 모여서 뿌자를 지내던 강변 가트의 풍경도, 코 앞에서 본 화장하는 모습도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새벽, 아침, 낮 그리고 밤. 갠지스강은 시간대 별로 매력이 달랐고 그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호객행위를 하던 뱃사공과 브라만들도 내가 만났던 그대로였다. 바라나시와 갠지스는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인도는 참 이상하다.
살 때는, 여행할 때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떠나고 나면 또 가고 싶어지는 이상한 나라이다.
바라나시는 특히 더 그런 인도이다.
한 번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도 나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빼놓더니, 잊고 있던 내 기억을 기안84가 깨웠고,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인도여행 영상을 본 기안84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기안84의 바라나시도 나의 바라나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네요"라고 그가 말한 '이런 나라'는 가 본 사람만 이해할 '그런 나라'이다.
바라나시에서 기차를 타고 델리로 가는 영상을 보며, 인도에 살면서 여러 번 기차여행을 했던 기억도 났다. '현실판 설국열차'같은 인도 기차의 추억이 또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