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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01. 2023

두 번째 인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인천공항을 출발, 싱가포르공항을 거쳐서 비행기 안에서만 총 10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인도 첸나이 공항에 도착을 했다. 땅 위에 두 발이 닿기만을 기다렸던 하늘 위 갇힌 공간 안에서의 6시간과 4시간은 지루했고 힘들었다.


착륙을 했고, 이미그레이션을 향한 복도를 걸으면서 그 힘듦이 모두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수많은 인도 사람들 사이를 걷는 그 걸음은 4년만이 아니라 4주 정도 잠시 한국에 다녀온 사람의 발걸음이었다. 편했고, 익숙했고, 반가웠다.

외국인은 나뿐인 듯했지만, 그들은 나를 다르게 바라보는 듯했지만 정작 나는 그들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그들처럼 피부는 검고, 눈은 깊고 클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이미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인도사람들과 인도라는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은 길었고, 3년 8개월은 짧디 짧았다. 인도에서의 내 시간은 순식간에 다가왔고, 한국에서의 시간은 비행기 안에 두고 내린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인도는 공항에서부터 '잘 왔노라'반겨주었다. 첸나이 국제공항은 몰라보게 깨끗하고 멋지게 바뀌어 있었고, 이미그레이션 직원은 친절했고, 일처리도 빨랐다. 수화물도 예전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공항 밖으로 예상보다 이르게 나갈 수 있었다.


긴 복도를 카트를 밀면서 걸어 나갔다. 남편이 복도 끝 문 밖에 기다릴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3년 8개월 만에 인도 첸나이를, 3개월 만에 남편을 만날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드디어 맞이한 인도, 첸나이 공항 밖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분위기는 그대로였지만 끈적하고 더운 공기가 아닌 쾌적하고 사원한 공기였고, 인도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었다. 향신료, 땀, 하수구 냄새 등이 섞인 공기 냄새를 상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밤공기였다. 첸나이가 많이 깨끗해졌다는 남편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른 공항의 일처리 때문에 정작 남편과의 감동적인 만남은 현실이 되지못했다. 느긋하게 출발한 남편은 아직 도로 위라고 했다.


늘 살고 있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인도 사람들 사이에, 대부분이 남자인 그들 사이에서 남편을 다리며 서 있었다. 밤 12시를 훨씬 넘겼지만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랜 비행, 한국은 이미 새벽 4시를 향하는 시각, '남편 차를 타고, 남편이 구해 놓은 우리 집에 빨리 가야지' 그 생각만 할 뿐이었다.


어둠 속 저 멀리 손을 흔들며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슬로비디오처럼, 영화의 특수 효과처럼, 남편의 모습이 탁 탁 탁 점점 커지면서 서너 번의 정지 장면 끝에 내 눈앞에 다가왔고, "오느라고 고생했다"며 긴 팔로 덥석 안아주었다.


15년 전, 2009년 그때의 인도 첸나이 공항의 모습이 필름 영화처럼 지나갔다.

모르는 나라, 낯선 도시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공항 밖을 나섰던 그때가 오버랩되었다.

빼곡하게 서 있는 인도 남자들 사이에서 아이들 아빠의 활짝 웃는 얼굴이 또렷이 보이면서 순간, 모든 두려움이 내려앉았던 그때 그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같은 공간, 다른 마음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비가 내리는 도로를 달려서 '우리 집'이라는 곳을 향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폭우 속, 한밤중에 흐릿하게 보이는 아파트는 고급스러운 새 아파트 느낌이 전해졌다.


한국을 떠나던 때도 폭우가 배웅을 하더니, 천둥과 번개까지 더해져서 밤새 거센 빗소리가 나를 반겼다.

이미 한국은 아침이 되는 시각, 밤을 꼴딱 새우며 청소와 정리를 끝내고, 다음 날 오후에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났더니 그제야 인도였고, 내 집이었다. 비록 거실 커튼이 없어서 눈이 부셨고, 인도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낯설었고 작동법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내 집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불이 너무 화려했고, 플라스틱 살림살이 색깔이 너무나 원색이어서 어색했지만 남편이 5개월 동안 살고 있는 내 집이었다.


어제도 갔던 곳 같은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어제도 걸었던 것 같은 아파트를 산책했다. 아파트 야외 수영장도 낯설지가 않다.

인도에서의 첫날이 자연스럽게 지났다.


두 번째 인도이다.

두려움도 없지만, 큰 기대감도 없다. 어제도, 그제도 쭉 살고 있었던 것처럼 무던히 자연스러울 뿐이다. 자연스럽게 살면 될 일이다.


인도 첸나이 우리 아파트이다.
아파트 베란다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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