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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20. 2023

인도에 다시 왔다. 존슨과 마하를 만났다.

존슨이 말했다. "내내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마하가 말했다. "마담이 인도에 다시 오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남편의 이른 퇴직이었다. 11년 인도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했었다. 오랜 시간 열악한 인도에서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했다. 남편은 정말 잘 쉬었다. 마침 코로나가 창궐했고, 산으로 들로 걷기 좋아하던 남편은 11년 동안 못 했던 자연 속을 많이도 걸었다. 그렇게 3년 동안의 남편의 휴식기는 코로나 종식과 함께 마무리되어 갔고, 많이 놀았으니  슬슬 일을 찾아보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다시는 갈 일 없을 줄 알았던, 기억에서도 많이 지워진 그 나라 인도에 남편이 가기로 결정을 했다. 회사의 큰 책임을 지고 재취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발령 3일 후에 남편이 먼저 떠났고, 갑작스러운 일에 한국에서의 뒷정리를 끝내고 5개월 뒤에 나도 드디어 다시 인도에 오게 되었다.


다시 적응할 것도 없었지만, 늘 살던 곳처럼 편했지만 두 주 가량의 형식적인 적응 기간을 보내고 나서 존슨에게 전화를 했다. 자전거 가게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장사는 잘 되는지 보고 싶어서 한 연락이었다.

한국에서 페북 메신저로 얘기할 때는 전혀 내색이 없더니 그제야 많은 빚을 지고 자전거 가게 문을 닫았고, 다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에 다시 가면 존슨에게 내 차를 맡기고 싶었지만 어엿한 오너가 된 존슨이 사업이 잘 되어서 더 성공하기만을 바랬는데 내 실망도 말이 아니었다.

내 차 운전을 하겠느냐고 물으니 당연히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7년 동안 우리 집 사였던 존슨은 다시 내 차 핸들을 잡게 되었다.


마하에게도 연락을 해 봤다. "마담!, 마담!" 하이톤의 목소리만으로 그 반가움이 전화기 너머로 충분히 전해졌다. 마하 목소리를 듣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마하는 반가움을 기쁘게 표현하는데 왜 나는 매번 눈물부터 나는지 모르겠다.

힘들었고, 힘들었던 우리 아줌마의 지난 세월이 반가운 목소리에 묻어서 들렸다.


5개월 동남편 혼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는 내 말에 마하가 버럭 화를 냈다. 자기에게 연락을 왜 안 하고 마스터가 집안일을 하게 했냐는 이유였다. 누가 들으면 돈도 안 받고 집안일을 해 줬을 것처럼 나무랐다.


고마웠다. 나를 반겨주는 것도, 남편 걱정해 주는 마음도, 예전처럼 마담을 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주는 변함없는 모습도 모두 고마웠다.

우리 집이 지금 일하는 다른 집에서 멀고, 자기 집에서는 말도 못 하게 많이 멀지만 마담집 일은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했다.

너무 멀어서 힘들 것 같아서 선뜻 부탁을 못한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었다. 일주일에 3일만 와 달라고 했다. 버스비는 따로 챙겨 주마했다.


딸 결혼시키느라 빚도 많을 테고, 코로나 때 일을 못해서 경제적으로 더 많이 힘들 것이 분명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집도 힘든데 우리 집까지 세 집일을 하려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 힘들어서 안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청소거리도 별로 없는 단출한 살림, 단출한 식구이니 다른 집에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을 했다. 


그 사이에 딸, 아들 모두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가 된 존슨과 큰딸은 아들을 낳고, 둘째를 또 가졌고, 작은딸도 결혼을 해서 딸을 낳아서 세 손주의 할머니가 된 마하와 언제까지 인도에서 살게 될지 모를 내가 그 언젠가의 어느 날까지, 지난 세월에 덧대어서 우리들의 세월을 또 이어가 보기로 했다.

 

어떻게 우리가 다시 또 만나게 되었는지는 꿈같은 것이 아니라, 따로 지냈던 4년이라는 시간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냥 그대로 그 세월이 쭉 이어지고 있는 것만 다.



존슨과 울 아줌마 마하, 들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속의 고마움을 살면서 조금씩 갚아볼 생각이다.

운전기사와 아줌마 때문에 속앓이를 해서 인도생활을 힘들어하는 많은 한국마담들의 이야기가 굳이 아니더라도,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인도에서 10년 넘게 살 수 있었던 이유 많은 부분이 그 둘 덕분이었고, 그 사실이 너무 고맙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담이 늘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더 고맙다.


결국은 사람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라도 사람 때문에 울게 되고, 사람 때문에 웃게 되는 우리도,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도에 다시 왔다, 7년 동안 우리 집 운전기사였던 존슨이, 10년 동안 내 살림을 맡아서 해 줬던 우리 아줌마 마하를 다시 만났다. 다시 내 차를, 내 살림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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