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남편의 이른 퇴직이었다. 11년 인도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했었다. 오랜 시간 열악한 인도에서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했다. 남편은 정말 잘 쉬었다. 마침 코로나가 창궐했고, 산으로 들로 걷기 좋아하던 남편은 11년 동안 못 했던 자연 속을 많이도 걸었다. 그렇게 3년 동안의 남편의 휴식기는 코로나 종식과 함께 마무리되어 갔고, 많이 놀았으니 슬슬 일을 찾아보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다시는 갈 일 없을 줄 알았던, 기억에서도 많이 지워진 그 나라 인도에 남편이 가기로 결정을 했다. 회사의 큰 책임을 지고 재취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발령 3일 후에 남편이 먼저 떠났고, 갑작스러운 일에 한국에서의 뒷정리를 끝내고 5개월 뒤에 나도 드디어 다시 인도에 오게 되었다.
다시 적응할 것도 없었지만, 늘 살던 곳처럼 편했지만 두 주 가량의 형식적인 적응 기간을 보내고 나서 존슨에게 전화를 했다.자전거 가게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장사는 잘 되는지 보고 싶어서 한 연락이었다.
한국에서 페북 메신저로 얘기할 때는 전혀 내색이 없더니 그제야 많은 빚을 지고 자전거 가게 문을 닫았고, 다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에 다시 가면 존슨에게 내 차를 맡기고 싶었지만 어엿한 오너가 된 존슨이 사업이 잘 되어서 더 성공하기만을 바랬는데 내 실망도 말이 아니었다.
내 차 운전을 하겠느냐고 물으니 당연히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7년 동안 우리 집기사였던 존슨은 다시 내 차 핸들을 잡게 되었다.
마하에게도 연락을 해 봤다. "마담!, 마담!" 하이톤의 목소리만으로 그 반가움이 전화기 너머로 충분히 전해졌다.마하 목소리를 듣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마하는 반가움을 기쁘게 표현하는데 왜 나는 매번 눈물부터 나는지 모르겠다.
힘들었고,힘들었던우리 아줌마의 지난세월이 반가운 목소리에 묻어서 들렸다.
5개월 동안 남편 혼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는 내 말에 마하가 버럭 화를 냈다. 자기에게 연락을 왜 안 하고 마스터가 집안일을 하게 했냐는 이유였다. 누가 들으면 돈도 안 받고 집안일을 해 줬을 것처럼 나무랐다.
고마웠다. 나를 반겨주는 것도, 남편 걱정해 주는 마음도, 예전처럼 마담을 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주는 변함없는 모습도 모두 고마웠다.
우리 집이 지금 일하는 다른 집에서 멀고, 자기 집에서는 말도 못 하게 많이 멀지만 마담집 일은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했다.
너무 멀어서 힘들 것 같아서 선뜻 부탁을 못한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었다. 일주일에 3일만 와 달라고 했다. 버스비는 따로 챙겨 주마했다.
두 딸 결혼시키느라 빚도 많을 테고,코로나 때 일을 못해서 경제적으로 더 많이 힘들 것이 분명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두 집도 힘든데 우리 집까지 세 집일을 하려는 이유를 알기 때문에힘들어서 안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청소거리도 별로 없는 단출한 살림, 단출한 식구이니다른 집에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결정을 했다.
그 사이에 딸, 아들 모두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가 된 존슨과 큰딸은 아들을 낳고, 둘째를 또 가졌고, 작은딸도 결혼을 해서 딸을 낳아서 세 손주의 할머니가 된 마하와 언제까지 인도에서 살게 될지 모를 내가 그 언젠가의 어느 날까지, 지난 세월에 덧대어서 우리들의 세월을 또 이어가 보기로했다.
어떻게 우리가 다시 또 만나게 되었는지는꿈같은 것이 아니라, 따로 지냈던 4년이라는 시간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냥 그대로 그 세월이 쭉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존슨과 울 아줌마 마하, 그들은 알지 못하는 내 마음속의 고마움을 살면서 조금씩 갚아볼 생각이다.
운전기사와 아줌마 때문에 속앓이를 해서 인도생활을 힘들어하는 많은 한국마담들의 이야기가 굳이 아니더라도,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인도에서 10년 넘게 살 수 있었던이유의 많은 부분이 그 둘 덕분이었고, 그 사실이 너무 고맙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담이 늘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더 고맙다.
결국은 사람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지라도 사람 때문에 울게 되고, 사람 때문에 웃게 되는 우리도,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도에 다시 왔다, 7년 동안 우리 집 운전기사였던 존슨이, 10년 동안 내 살림을 맡아서 해 줬던 우리 아줌마 마하를 다시 만났다. 다시 내 차를, 내 살림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