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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an 24. 2024

나도 유튜버가 되어볼까?

인도에 다시 와서 살게 된 지도 어영부영 5개월이 되었다.

처음 한 달은 반가웠고, 신기했고, 흥미로웠다. 부러 외출을 했고, 괜히 돌아다녔다. 요가도 배우기 시작했고, 영어 투션도 호기롭게 시작했다. 뭐든 재미있었다. 동네 축제는 빠짐없이 보러 다녔고, 슈퍼, 식당등도 찾아서 구경 다녔다.

11년이나 살았던 도시인데, 마치 처음인 것처럼 그랬었다.


딱 한 달이었다. 너무 잘 아는 이 나라, 이 도시의 흥미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외출이 줄었고, 꾸역꾸역 요가와 영어공부만 붙잡고 살았다.


두 달이 지나고 한국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한국 공기를 쐬고 왔더니 인도에 마음을 붙이기가 더 힘들어졌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고열로 일주일을 고생하고 났더니 더 그랬다.


남편은 회사에서 식사 해결이 모두 되고, 종일 회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나더러 한국에 가고 싶으면 가라고까지 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 내가 남편의 수고를 알아주고, 덜어준다는 내 위안 때문었다.


요가도 시들, 영어공부도 재미가 없어졌다. 종일 집에서 유튜브 보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글쓰기도, 블로그도 예전 같지가 않게 되었다.


큰 화면에서 알아서 돌아가는 유튜브 영상만 재미있을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한국 예능, 시골집짓기, 집소개, 인테리어, 영어공부, 영화 리뷰, 여행, 요리 등등 우연히 한번 본 영상은 귀신같이 알고리즘이 알아서 비슷한 채널로 연결해 주었다.


내 관심사를 알아서 보여주는 유튜브는 인도에 사는 내게 좋은 한국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내 유튜브 채널 생각이 났다.

인도에 다시 오던 그날의 기록을, 예전 폰으로 촬영했던 흐린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놓았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이 봤다고 되어 있었다.


화질은 흐리고, 영어자막이며 편집이 내 개인 기록으로는 봐줄 만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부끄러운 영상이다. 영상 편집은 손에 익지도 않고, 결과물도 별로여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그 한 개의 영상으로 내 유튜브 채널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의 인도 생활 기록은 블로그만로 만족하기로 결정을 내린 터였다.



블로그를 오래 하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사진도 찍고, 짧게 영상 촬영도 하게 된다.


두 주 전쯤에 우연히 바닷가의 생선시장을 지나면서 갈치를 좀 사려고 차에서 내렸다가 시끌시끌 생선 좌판들과 고깃배들과 그물을 터는 어부들과 상인들과 버려진 생선 대가리라도 맛보려는 까마귀 떼들의 풍경이 나도 모르게 폰을 꺼내게 만들었다.


한국 방문 때 새 폰을 장만했는데, 화질이 너무 좋아서 마치 좋은 카메라로 찍은 듯했다. 영상이 너무 선명하게 잘 찍혀서 블로그에만 잘라서 올리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4개월 만에 내 유튜브 채널을 열었고, 3~4개 짧은 영상을 편집앱에서 묶어서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편집은 서툴지만 영상이 깨끗하고 좋아서, 바닷가 도시인 인도 첸나이의 모습이 너무 잘 담긴 것 같아서 나도 여러 번 돌려서 보게 되었다. 결과물에 만족하게 되니까 영상 업로드가 재미있어졌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리려고 조금씩 찍어 뒀던 영상들을 하나씩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자막도, 어떤 편집도 없다. 내가 찍은 짧은 영상들을 붙여서 올리기만 다.


내가 찍은 영상을, 내가 갔던 곳, 내가 본 풍경, 내가 먹은 음식을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 폰으로 찍은 영상은 화질도 안 좋고, 유튜브 영상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내 기록이라는 면에서는 블로그 못지않은 만족도가 있었다.


1분 이내의 짧은 영상, 쇼츠도 재미있었다. 하루 만에 1200명이나 본 쇼츠가 있다. 웬일인가 싶은 마음과 유튜브를 꾸준히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15년 전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처럼 열정이 생기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설렘과 기대가 무한한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재미도, 흥미도 없던 이 도시 첸나이에 갑자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인도라는 나라와, 이 도시의 내 기록이면서, 누군가에게 소개하면 좋겠다는 내 마음의 출발이기도 하다.


흐리긴 하지만 예전폰에서 인도 서민동네 골목길과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멋진 뷰와 동네 생선가게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영상을 끄집어냈다. 하나씩 영상을 업로드하고 보니, 내 눈에 읽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기록이 하나씩 정리되고, 쌓여가는 느낌이다. 곳간에 곡식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그 곡식은 아직 최고 상품은 아니지만 내가 먹고, 내 지인들에게 나눠 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앞으로 농사 기술이 익숙해지면 그 곡식을 내다 팔게도 될까?


남의 유튜브 구경만 할 게 아니라, 무궁무진 재미있는 이 나라를 서툴더라도 촬영을 해보고 싶다. 유튜브 덕분에 이 도시를 다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계기가 생겼다.


이제 제대로 나도 유튜버가 되어볼까?



⬇️[한국 마담] 유튜브 구경하세요

https://youtube.com/@koreanmadam?si=QToRqExWy4wHt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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