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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Dec 07. 2023

인도에서는 전기도 평등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인도 첸나이에 강력한 사이클론이 지나갔다. 거친 바람과 많은 비를 뿌리며 한 날 새벽에 들이닥친 사이클론은 도시를 희롱하듯이 구석구석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가 느릿느릿 천천히 같은 날 밤에 빠져나갔다.


하루 동안 도시는 정전 상태였다. 배수 시설이 열악한 도시에 순식간에 물이 차면서 감전사고를 우려한 강제 정전이었다고 한다. 밤이 되자 도시는 암흑상태였다. 아파트 12층 대로변에 사는 나는 그 암흑을 고스란히  눈에 마주했다.

우리 아파트와 그 옆의 또 다른 고층 아파트와 그 의 고층 병원 건물만이 밝게 우뚝 서 있었고, 낮은 주택들은 불이 켜진 곳이 거의 없었다. 간혹, 아주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사이클론이 지나면서 암흑이 된 도시, 인도 첸나이


자체 발전기가 있는 우리 아파트는 낮에 잠시  배수펌프에 집중 전기 공급을 할 때 외에는 정전이 된 적이 없었다. 20층 아파트 집마다 불이 훤했고, 심지어 대로변까지 뻗은 길에도 가로등이 불야성이었다. 그 불야성은 아파트 입구에서 야박하게도 암흑으로 끊어져 버렸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플래시나 촛불을 켜 놓고, 집 안의 물을 퍼내고 가재도구를 닦으면서, 또는 골목에 아직 물이 안 빠져서 그 마저도 못하고 속수무책일 저들이 휘황 찬란 높고 밝은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괜히 내 잘못도 아닌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15년의 첸나이 대홍수 피해를 겪은 가까운 한국인 지인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들의 상황이 짐작되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소리, 빗소리를 이겨가며 우리는 잠을 자기 위해서 불을 껐고, 그들은 잘 수 없음에도 불을 켤 수 없는 밤을 보냈다.



[평소의 야경과 정전 때의 야경, 비교 사진]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너무 예쁜 주황빛이 베란다에 가득했다. 밤사이 비도, 바람도 그쳤고, 그것들이 밀려난 자리엔 지난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출이 만든 아름다운 노을이 장관의 하늘을 만들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물러간 하늘에 해가 을 내밀었고, 해의 붉은빛은 넓고 길게 펼쳐진 구름을 주황빛으로 감싸며 흐르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이었다.

도시를 삼킨 무서웠던 사이클론은 눈부신 하늘과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를 남기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다.


감격에 젖어서 한동안 베란다에 곧게 서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아파트 12층에서 바라본 하늘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서 바라본 무지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내 눈은 차츰 아래로 향했고, 우리 아파트 건너 마을은 여전히 새벽 불을 밝힌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밤새 정전이었던 것 같았다.

여느 때 같으면 아침밥을 하려고 일어난 엄마들이 켜 놓았을 법한 불빛이 반짝이어고, 부지런한 누군가의 오토바이나 오토릭샤나 트럭들의 불빛이 도로 위를 움직여했다.


나는 눈이 부셔서 끈 전등이었는데, 기온이 내려가서 켜지 않은 천장 선풍기였는데,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있어도 서늘했던 그 밤에, 저들은 축축하고 추웠을 집에서 정전까지 된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인도는 전기도 불평등의 계급을 나누고 있었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그 시간 동안에 고층아파트에서 전기 걱정 없이 보내는 동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확연한 나뉜 계급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전기가 아니었다.


배수기 펌프에 전기를 집중 공급하느라 잠시 정전이 된 그날의 그 시간에, 그 나뉜 계급의 상위에 앉아서,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 일로, 조금 불편한 일일 뿐인 인터넷이 안된다는 이유로 안절부절못했던 내가 나중에서야 너무 부끄러웠다.


전기나 물과 같은 기본적인 것은 평등하게 누리고 살았던 한국인인 나는 저들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나라에서도 누구나 당연히 누리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다. 내가 있는 곳이 밝았기 때문에 어두운 그곳이 단박에 눈에 띄지가 않았다.


빈부차이가 심한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가 않았다.

전기마저도 평등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내가 누리는,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일들은 감사와 더불어 미안한 일이었다.


전기, 같은 나라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가질 수 있는 이 나라, 이 도시가 빨리 오기만 바랄 뿐이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덜 미안했으면 좋겠다.



[평소의 동네 모습과 정전 때의 모습, 비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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