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온 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리 위의 가르마 주변으로 하얗게 내려앉은 새치의 길이를 보고 알 수 있었다.구글 지도를 검색해서 동네 미용실을 찾아 갔다.
11년 동안 살았던 인도, 4년 만에 다시 살게 된 인도, 이제는 한국인들이 다니는 곳이 아닌 우리 집 주변에서 사는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슈퍼도, 식당도, 병원도 그리고 교회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생각을 굳힌 터였다.
그래서 동네 골목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여성전용 로컬 미용실의 문을 열었다.
미용사로 보이는 두 명과 한눈에도 어려 보이는 수습과정의 소녀, 세 명이 너무도 반갑게 그 미용실 최초의 외국인 손님을 맞아 주었다.
염색약을 바르고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니 그 시간에 발 페디큐어를 받아 보라고 권했다.
인건비가 아직은 싼 인도, 염색약 값이 비싸서새치 염색비는 물가대비 비싼 편이지만 종아리까지 마사지도 해주는 페디큐어는 4~50분에 8000원 정도였다.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내 발이 호사를 누리는 동안에 열일곱 살이라는 수습생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과정을 배우고 있었다.
한국이나 인도나 미용실 분위기는 똑같다. 미용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내가 한국,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그 수습생 소녀, 갑자기 큰 눈을 반짝이며, 들뜬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그러면 BTS 알겠네요?,BTS 봤어요?"라고 물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그 소녀의 타밀어를 모두 알아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코리아', 'BTS' 두 단어와 표정, 손짓 만으로 그 소녀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의 BTS이다.
영어를 전혀 못 하는, 내가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그것부터 물어보는, 남인도 첸나이 대도시 외곽의 어느 이름 모를 마을에 사는, 외국인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그 소녀도 아는 BTS이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영어도, 힌디어도, 타밀어도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로 노래하는 가수를 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그 멤버가 6명인지, 7명 인지도 헷갈리는데 생소한 언어의 7명의 멤버 이름까지 줄줄 외우는 인도 소녀가 놀랍기만 했다.
유튜브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리우드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인도는, 특히 보수적인 남인도 첸나이는 '강남스타일', '꽃보다 남자' 정도의 한국 대중문화만 조금 알려졌었는데 몇 해 전부터 K-POP 팬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BTS가 이렇게 인도 남쪽까지 알려져 있었다.
우리 운전기사는 요즘 한국드라마에 빠졌단다. 대충 하는 얘기가 미래와 현재가 왔다 갔다 하는내용이라는 것 같은데 그런 류의 많은 한국 드라마 중의 하나를 보는 중인 것 같았다. 타밀어 자막으로 보고 있다며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K-pop, K-드라마가 남인도에 까지 이미 깊숙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발리우드 노래를 듣고, 발라우드 배우들의 춤을 따라 추고, 발리우드 영화를 보던 그들이 자기들이 사는 '타밀나두 주'보다 면적도 작고, 인구도 더 적은작은 나라 '사우스 코리아'의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드라마를 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부끄럽다며 사진 찍지 말라던 그 소녀는 어쩌면 자기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일 한국 아줌마에게 가기 전에 꼭 셀피를 같이 찍자고 했다. 그래서 내 휴대폰으로, 그 아이 휴대폰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단지, BTS가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중문화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국에 다녀올 때, BTS 사진이라도 구해서 그 소녀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끄럽다며 사진찍지 말라던 이 소녀는 BTS 얘기하느라 내 폰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질문을 해댔다. 그러더니 셀피를 같이 찍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