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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06. 2023

송편과 강정이 인도에서 왔을까?

추석이 며칠 지난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영어 과외 선생님이 나 먹으라고 뭘 싸들고 왔길래 뭔가 해서 펼쳐보니 맛살라 도사(masala dosa)였다.


영어 공부란 것이 내 신상 소개, 가족 얘기,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 음식이 맛살라 도사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 오는 길에 도사를 파는 식당이 보여서 내 생각이 났다며 고맙게도 부러 식당에 들러서 포장을 해 온 것이었다.


맛살라 도사(masala dosa)


혼자만 먹기엔 뭣해서 추석 때 선물 받은 송편과 수정과를 내어 놓았다. 얼려 뒀던 송편은 전자레인지에서 터져버렸지만 맛있다며 영어 선생님이 익숙한 듯 잘 먹길래 한국음식이 입에 맞냐고 물어봤다.



잠깐만 다려보라더니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나는 당연히 우리나라 송편인 줄 알았다. 내 눈에는 익숙한 냥 송편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재미있게 빚은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영어가 적혀있고, 그 영어는 눈에 익은 인도식 스펠링이었다. 인도 음식이라고 했다. 깜짝 놀라서 다시 물어보니 남인도에서 먹는 음식인데 쌀 반죽에 자그리(Jaggery:정제 안된 설탕)를 넣은 이라며 자기가 먹던 송편을 가리키며 모양과 맛이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는 참기름을 바르는데 자기들은 기(ghee; 끓인 버터)를 반죽에 섞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깨강정과 정말 똑같은 것도 슈퍼에 많이 파는 이 나라, 남인도의 이 도시이다.


인도 슈퍼에서 산 깨강정


남인도에, 특히 이곳 타밀나두주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들이 참 많다.

우선 비슷한 말이 많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나, 언니, 아파, 궁디(경상도 방언: 엉덩이), 메뚜기, 와(come) 등등 생각나는 단어만 이 정도이고, 어순도  주어+목적어+동사로 우리말과 똑같다. 그래서 영어 단어만 우리나라 말처럼 쭉 나열해도 이들은 모두 알아듣는다.


어린이들 놀이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것이 많다고 들었다. 자치기 놀이를 하는 인도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같은 말, 같은 놀이, 깨강정은 알고 있던 것이었는데 송편 사진까지 보고 나니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의 김수로왕과 허 씨의 시조라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 설화가 사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아유타국이 인도 남부 타밀나나주의 남쪽 끝의 '칸얀쿠마리'라는 설도 있다는데 왠지 그 이야기가 믿고 싶어지는 송편과 똑같이 생긴 사진이었다.


'송편'과 '강정'의 실제 유래가 어떻든 간에 송편과 똑같은 인도 음식 사진을 보는 순간, 신라시대부터 먹었을 것만 같고, '궁디'라는 경상도 방언이 인도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고, 타밀나두 공주가 신라의 왕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싶게 만들었다.


남인도 사람들은 언제부터 그 송편을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상상은 내가 살고 있는 인도의 이 지역을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만들고 있다.


오늘도 요가학원 수강생 중의 한 젊은 작장인 아가씨가 내가 남한에서 왔다고 했더니 눈을 반짝이며 자기가 BTS 뷔를 너무 좋아한다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 아가씨는 한국의 BTS 덕분에 한국을, 나는 인도의 송편 닮은 음식 덕분에 인도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쌀이 주식이고, 깨도 많이 먹는 두 나라이니까 비슷한 음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 깨강정과 송편과 똑같이 생긴 음식은 인도 타밀의 공주가 어릴 때 먹던 음식을 신라에서 살면서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상상을 해본다. 남인도 타밀나두주의 칸얀쿠마리에서 온 신라의 왕후가 고향의 엄마가 만들어 주던 깨강정과 송편을 만들어서 10명이나 되었다는 아들들에게 고향 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향수를 달래는 모습을 말이다.


퓨전 사극 속의 인도 공주와 신라 왕과 그 아들들과 송편이 머릿속에 내내 머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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