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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17. 2023

반가움이 익숙함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한 달

인도에 다시 돌아온 지 한 달을 훌쩍 넘기고 두 달이 가까워온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시차 적응과 기온 적응을 하는 시간이었고, 그다음 일주일은 동네 적응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한국이 아닌 인도에 내가 있었다.


10년도 더 넘게 살았던 인도이지만, 한국에서의 4년은 인도를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에 익숙해지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망각이라는 단어에 감추어져 있던 그리움을 애써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살러 갈 일 없는 인도를 그만 잊자는, 그리워도 말자는 다짐, 혹은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인도는 서서히 잊혔고, 한국은 생각보다 적응이 되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이름도, 자주 가던 식당이름도, 도로 이름도 단박에는 생각이 안 나게 되었을 즈음에, 한국에 줄곧 살고 있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생활이 편하고 좋아질 즈음에, 그리움이 스멀스멀 망각의 알속에서 고개를 내밀던 즈음에 남편의 재취업, 인도 재발령이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급하게 남편을 먼저 보내놓고, 5개월 뒤에 4년 만에 나도 다시 오게 된 인도이다.

잊고 있었던, 막연하게 그리웠던 인도였다. 경유지 싱가포르 공항의 첸나이 공항으로 가는 탑승구 앞에서부터 그 그리움은 반가움으로 콩닥거렸다. 그곳에 모여있는 인도 사람들을 보는 순간 그들이 너무 반가워서 긴 비행의 피로마저 사라지는 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반가움은 첸나이 국제공항을 빠져나와서 남편이 구해놓은 내 집으로 가는 도롯가 풍경 속을 내내 따라왔다.

 

인도의 공기 냄새가 반가웠고, 남인도 첸나이의 후끈한 밤열기가 진하게 반가웠고, 쏟아붓는 굵은 빗줄기가 반가웠고, 도로 위의 앞다투어 울리는 경적소리마저 반가웠다.

인도 사람들이, 강한 향의 인도 음식들이, 허름한 노점들과 열대 과일이 넘치는 컬러풀 과일가게와 눈에 익은 주스나 우유팩이 진열되어 있는 슈퍼마켓이 너무 반가웠다.


키 큰 열대나무와 다채로운 꽃들이 반가웠고, 문턱 낮게 드나들게 된 5성급 호텔의 뷔페식당이 반가웠고, 11년 동안 다녔던 단골 식당의 음식들이 반가웠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운전기사 존슨과 우리 아줌마 마하가 눈물 나도록 반가웠다.


그렇게 그렇게 반가움의 시간들이 쌓이더니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는 내가 한국에서 다시 살았던 4년의 시간이 망각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 화단의 꽃나무들이 잘 자라는지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되었다. 딸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귀찮게 했던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고르고 골라서 달았던 창문 커튼들이 어떤 문양이었는지 세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딸이 찾는 집안의 물건은 어디에 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건망증은 분명히 아니다. 12시간의 이동, 시차, 급격한 기온과 환경의 변화는 두고 온 한국을 망각의 항아리에 넣어버렸다. 한 달이 지나니 그 항아리의 뚜껑마저 닫혀버렸다.


인도에 사는 동안은 애써서 그 뚜껑을 열고 싶지가 않다. 한국에서 인도를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한 곳은 잊고, 다른 한곳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잊음과 동시에 인도가 다시 익숙해진 것이다.


인도가 반가웠고, 그 반가움이 익숙함이 되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그 익숙함으로 또 살고 있다. 익숙함은 결코 무료함이 아닌 편함이 되었다.


한국으로 다시 귀국을 할 때까지 나는 또 망각과 적응의 편리한 시스템에 기름칠을 하며 잘 지내볼 생각이다.

다시 돌아가게 되면 한 달 안에, 어쩌면 그 보다 더 빨리, 분명히 익숙해질 한국은 그곳에 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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