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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18. 2023

꼬리한 '파파야'와 고소한 '도사' 냄새가 이끈 인도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어서 코도 잘 막히고, 환절기에는 콧물을 달고 사는 악조건에서 내 코는 후각이 유달리 부지런을 떤다.

덕분에 인도에서의 각종 냄새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10년도 더 넘게 살다가 귀국을 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또 그곳에서의 재미가 커서 인도는 잘 생각이 안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느닷없이 코 끝에 그리운 냄새가 스칠 때가 있었다. 인도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열대 과일 '파파야'의 그 진한 꼬리꼬리냄새였다. 파파야가 근처에 있을 리가 만무한데 내 코는 그 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어서 '파파야 먹고 싶어!'라는 생각을 물고 인도의 온갖 강한 냄새들이 콧 속을 헤집고 스멀스멀 들어오곤 했다. 고소한 도사 냄새가 나면, 달콤한 망고 냄새, 비리야니의 강한 향신료냄새, 시큼한 커드 냄새, 그리고 향긋한 짜이 냄새가 뒤를 이었다.


그런 날이면 인도 생각을 했고, 인도에 살 때 그 열대 과일들과 인도 음식들을 많이 즐기지 못했던 사실이 후회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파파야 향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그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도사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도에 갑자기 다시 오게 되었다.

한 달간은 파파야와 도사를 미친 듯이 먹었다. 과일가게에서의 장바구니에는 어김없이 푹 익은 파파야가 담겼다. 누르면 움푹 들어가는 물렁한 놈으로, 하얀 진도 나는 샛노란 놈으로 골라 담았다. 집에 가서 바로 잘라서 먹겠다는 의지였다.


기회만 되면 '도사(DOSA)'를 먹었다.

배달앱을 깔아서 배달도 시켰고, 아파트 페스티벌 때는 푸드코트에서 갓 구운 따끈한 도사를 사 먹었고, 호텔 조식뷔페에서도 어김없이 '플레인 도사'와 으깬 감자가 가득 든 '맛살라 도사'를 먹었다.


파파야와 도사를 실컷 먹었다.

반을 가르면 개구리알처럼 생긴 투명막 안의 동글동글 까만 씨가 가득하고, 꼬리꼬리한 냄새도 강하지만 나는 파파야가 맛있다.

기름 두른 뜨거운 프라이팬에 종이장처럼 얇게 구워내는 도사는 고소한 콩, 코코넛, 커리 등등의 소스와 구수한 삼바 소스와 먹으면 제격이다. 으깬 감자와 다진 양파가 듬뿍 든 '맛살라 도사'는 특히 더  맛있다.


인도에 다시 온 지 두 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 먹고 싶었던 파파야와 도사를 실컷 먹고 났더니 못 끝내고 인도에서 돌아온 듯했던 한국에서의 아쉬움이 모두 충족되었다.

이제는 파파야만을 사기 위해 과일가게에 가는 일도, 저녁 메뉴인 도사를 먹기 위해서 저녁에 부러 인도 식당을 가는 일도 없다. 실컷 먹었고, 언제라도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이리라.


음식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닌데도, 한국에서 인도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았는데도 가끔 인도의 파파야와 도사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노란 파파야의 특별한 향기와 노릇하게 구운 도사의 기름 냄새를 따라서 나는 인도에 다시 왔다.


과일가게에서 파파야를 사는 중이다.
수퍼에서도 어김없이 파파야를 산다.


우리 집 식탁 위에는 항상 파파야가 있다. 더러는 파파야 특유의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 맛있다고 소문난 인도 망고보다 나는 피파야가 더 좋다.

8월 말에 돌아온 인도 첸나이, 망고는 철이 지났지만 파파야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첸나이에 늘, 어디에나 있는 파파야가 그래서 더 반갑고 고맙다.


호텔 브런치를 먹으러 가서도 도사는 꼭 주문한다.
우리 집앞 인도식당의 도사.


우리 아파트 길 건너편에 도사를 파는 식당이 있다. 예전에 자주 갔던 그 브랜드 식당이다. 하필 집 앞에  식당이 있어서 이건 운명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도사보다 난을 더 좋아하는데 나는 남인도, 타밀 음식인 도사가 더 맛있다.


글을 쓰고 있는 코 끝에 파파야의 꼬리한 향기가, 도사의 고소한 냄새가 스친다. 먹고 싶어 졌다.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인도, 그곳에 내가 산다. 먹으면 될 일이다.



*도사(DOSA).. 발효 쌀과 검은 렌틸콩 반죽을 크레페처럼 넓고 얇게 부친 인도 빵.(음식의 기원:인도 남부 타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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