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핵무기도 보유한 나라이고, 우주선도 쏘아 올려서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자주 갖는 나라이다.
최근에도세계 최초로달의 남극착륙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 집 정수기가 고장이 났다. 정수기라는 것이 없던 15년 전에도 큰 생수통을 펌프질 해가며 잘만 살았지만, 집주인이 기왕에 달아 준 것이니 편리하게 사용하던 중이었다. 석회수 수돗물로 씻은 그릇이나 채소를 헹구는 용도로, 양칫물로 사용하기 좋았다.
남편이 먼저 인도에 온 지 5개월, 내가 온 지 1개월, 식구가 없어서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 6개월 된 정수기가 고장이 난 것도 이해가 안 되었지만 그 고장 난 정수기를 한 달이 넘도록 고치지 못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있다.
별다른 기능도 없는 정수기이다. 우리나라처럼 냉수, 온수, 얼음까지 나오고, 자동 살균도 되는 그런 제품이 아니다. 오로지 필터를 통해서 정수만 되는 단순한 기능의 제품이다. 그런데 한 달 동안 3명의 기술자가 왔다가 갔고, 각각 1시간 동안 들여다보고 돌아갔다. '필터를 교체해야 한다', '전선이 끊어졌다'. '단자가 문제이다'. 셋이 모두 다른 문제를 지적했고, 결국은 필터 문제는 아니었고, 전선을 교체했고, 단자는 부품을 못 구해서 기다리는 중이라는 연락만 한 뒤로 벌써 1주일이 지나고 있다.
없이도 살았지만 있다가 없으니 불편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내 정수기안의 부품은 언제 구해서 언제 고치려는 것인지 답답하다.
여기는 인도라고, 한국이 아니라고 마음을 추스르지만, 또 언제 연락도 없이 현관벨을 당당히 누르며 들이닥칠지 모르는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지는 중이다.
엎친데 덮친다고 에어컨마저 고장이 나버렸다. 미국에 산다는 집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답장을 기다리는데 한 달, 같은 사람이 두 번을 왔다 갔고 역시나 부품을 구한다며 기다려달라고 한지 두 주가 지났다.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하면 오겠다는 날짜에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갈고닦는 나의 기다림의 수련이 결코 짧지는 않았을 텐데 나에겐 수련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정수기야 없이도 살았는데, 그 방은 사용하지 말지 뭐..' 나는 오늘도 타는 속을 아닌 척하며 거짓 수련의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일요일, 모처럼 남편과 영화를 보며 쉬고 있었다. 심상찮은 현관벨소리와 함께 안방 욕실에서 누수가 된다는 얘기를 하려고 아래층에서 부른 수리공이 올라왔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수리공이 오고, 살펴보고, 또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내 건강을 위해서 안 고치기로 했다. 욕실도 많은데 사용하지 않으면 간단히 해결이다.
포기가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다.
2040년까지 우주인을 달에 보내고, 우주정거장도 세울 것이라고 선언한 인도이다. 우리 집에 정수기 고치는 사람, 에어컨 수리공부터 좀 보내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