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자가격리를 하고, 한 이틀은 방치했던 집안 정리를 하느라 거의 열흘 만에 바깥공기를 쐬러 나갔다. 장도 좀 보고, 새치머리 염색도 해야 했다.
열흘 만에 나가본 바깥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다. 만개했던 가로수의 벚꽃들은 꽃송이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져서 초록 잎과 불그스레 꽃받침만 매달고 있었고, 노란 개나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초록 잎들만 무성했다. 분홍, 노랑의 세상이 열흘 사이에 초록의 세상이 되어있었다. 분홍의 벚꽃과 노랑의 개나리꽃은 보라색 라일락과 진분홍 진달래가 대신하고 있었다.
열흘 사이에 겉옷들도 많이 얇아졌고, 어린 학생들은 반팔 셔츠도 보였다. 봄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내 상황이 세상의 전부일 때가 많다. 내가 아팠던 그 시간과 내가 격리했던 그 시간에 세상도 잠시 멈춰있을 거란 착각을 하고 산다.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래 줬으면 싶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나의 멈춤이 세상의 멈춤은 아니다.
만개했던 벚꽃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자연의 시간은 무엇과도 상관없이 자기만의 시간대로 움직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없는 동안에 내가 아는 어떤 이도 자기의 시간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만 갇혀 있었다. 자연도, 사람들도 나의 멈춤의 시간에 같이 멈추지는 않았다. 또 자연에서 교훈을 얻는다.
새치 염색을 하면서 오랜만에 밝은 거울에 비친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은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었다. 나의 그 시간들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에서는 안 보이던 객관적인 내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다. 부기는 제법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치는 열흘 사이에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격리 전에 염색을 했어야 하는 텀이었는데 열흘 동안을 더 방치했더니 가르마 주변이 아예 하얗게 보였다. 염색약이 보통 때보다 더 많이 든다고 했다.
밖으로 나왔다. 새치 염색만 했을 뿐인데 좀 전과 기분이 달라졌다. 길에 떨어진 벚꽃 꽃받침들이 염색하기 전에는 지저분하게 보였는데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 상태에 따라 보이는 대상의 상태가 결정되고 있었다. 내 기분에 따라 보이는 세상이 달랐다.
봄은 많이 짧았다. 그 봄은 멈춰있는 나를기다려주지는 않았다. 세상으로 나왔다. 멈춰있던 나의 시간도 봄의 끝자락에서 같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짧다면 짧은 일주일 동안의 격리의 시간이 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에 결코헛된 시간은 없다고 느끼며 자유의 소중함을, 자연의 귀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