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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n 01. 2022

아픔을 견뎌 낸 기특한 단어, 행복

잘 받고 더 잘 주는 사람 되기


 운동화는 늘 불편하다. 상처만들, 그 상처물집이 잡히고, 물집에 생긴 딱지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비로소 내 발에  맞는 편한 신발이 된다.


 작은딸이 내 생일에 운동화 선물을 했었다. 걷기 편하게 나온 가벼운 운동화라며 운동할 때 신으라고 사준 것이었다. 운동은 고사하고 잠깐 마실에만 나갔다 왔는데 발뒤꿈치에 작은 물집이 생겨버렸다. 따갑고 쓰린 상처가 치유되고 나서야  그 운동화는 편해졌다. 걷기 운동에 최적화된 내 신이 되었다.


 세상사가 그런 것 같다. 상처 없는 행복은 드물다.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언젠가 지나온 아픔이 함께 포함되어있다.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것을 누가 느끼게 될까? 행복의 가치를 과연 알게는 될까?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돈을 벌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한다. 과거에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못해봤던 경험이, 아파서 힘들었던 시간이, 여유가 없어서 꼼짝 못 했던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등 떠민다. 발뒤꿈치에 잡혔던 물집의 경험이 신기 편한 운동화의 행복을 알게 한다.

  

 예전 같으면 연고 바르고, 상처 밴드 붙이고 며칠만 지나면 아물던 상처였다. 이번에는 상처가 쉬이 낫지가 않았다. 낫는다 싶으면 또 물집이 잡히기를 반복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상처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연고와 먹는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3일 치 약을 먹고 부지런히 연고를 발랐다. 그래도 낫지가 않았다. 4일 치 약과 더 강한 성분의 연고를 처방받았다. 그제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간혹 있다. 쉽게 해결이 될 것 같던 사소한 문제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서 걷잡을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도움이 필요해진다. 자존심 때문에, 혹은 번거로워서 선뜻 도움 요청을 못하다가 일은 커져버리고 가볍게 부탁할 일이 무게감을 가지고 부탁을 하게 만든다. 작은 상처일 때 아물게 해야 한다. 혼자서 해보려는 미련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움을 받으면 나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부탁을 잘 안 하는 편이었다. 안 받고 안 주기가 편하다며 살았었다. 누가 그러더라. 받기를 잘해야 한다고. 잘 받는 사람이 주는 것도 쉽다고.


 받는 일이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잘 받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그것 또한 쉬워졌다. 생각을 고치고 났더니 받는 마음이 편해졌다. 감사하게 받으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은 언젠가 어딘가에 내가 또 베풀면 되었다. 받은 곳에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을 한 이후로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내가 필요한 곳이 어딘가에 있었다.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게 되어있다. 치유되는 시간의 차이와 깨끗하게 치유되느냐  흉터를 남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의사를 찾아갔기 때문에 상처가 나았던 것처럼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 요청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때에 병원을 갔으면 상처의 흔적이 이렇게 진하게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혼자서 끌어안고 애쓰는 일은 더 이상 안 하기로 다짐했다. 적절한 때에 손을 내밀라고, 손 내미는 일이 어려웠다면 노력을 해 보라고, 그래서 잘 받고 더 잘 주는 사람이 되자고, 쉰 중반을 넘기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또 한 가지 철이 든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상처가 치유되면서 검게 변한 피부는 차츰 제 색깔을 찾고 있고, 딸이 선물한 운동화는 이제 맨발로 신어도 너무나 편한 신이 되었다. 물집과 상처가 완벽한 내 운동화를 만들어 주었다.


 발뒤꿈치의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피부를 보면서 행복의 가치를 생각해 다.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과거의 '상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다. 상처를 견뎌온 그 시간들 때문에 행복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50여 년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잘 견디고 이겨낸 지금의 나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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