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16. 2021

견뎠더니 치유가 되더라

딸의 아토피와 엄마의 청소병


청소포 끼운 밀대로 대충대충 걸레질을 하는 엄마를 보더니, 작은딸이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라고 말한다.


청소 안된 집을 못 견뎌하던 엄마가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1회용 청소포 끼운 밀대로 설렁설렁 바닥을 닦는 엄마를 보면서 지도 옛날 생각이 난 모양이다.


작은딸은 3살 무렵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다.

굉장히 심했었다. 집먼지 진드기가 원인이라는 진단을 받았었다. 그때부터 나의 청소병(?)이 시작되었다.


원래도 청소, 정리를 좋아했는데 딸의 아토피가 청소와 빨래에 온 힘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딸을 괴롭히는 진드기를 끝까지 없애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끈질긴 싸움이 되었다.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저층으로 이사도 하고, 화초도 많이 키우며 아토피 퇴치를 위한 방법을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아토피는 아이가 자라면서 차츰 좋아졌다. 인도에 이사를 가서는 거의 나았다 싶을 정도로 좋아졌다. 인도의 환경이 맞은 것인지, 자라면서 체질이 바뀐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참 힘든 시간이었다. 3살부터 6살까지 3년 동안은 아토피와의 전쟁이었다. 이후에도 아토피는 있었지만 진물이 나올 만큼 심한 상태는 그 3년 정도였다.


아토피에 좋다는 약국에서만 팔던 보습제를 들고 살았고,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로션이 귀한 약초 인양 끌어안고 살던 때였다. 내 기억에는 우리나라에서 '아토피'라는 단어를 막 쓰기 시작할 때였었다. 떠도는 온갖 민간요법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었다.


진물이 나는 팔다리의 오금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속으로 많이 울었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가려움 때문에 지도 나도 그 3년 동안에 2시간 이상을 푹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청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걸레를 늘 손에 쥐고 살았다. 빨래가 취미였고 청소가 특기가 되었다. 그런다고 진드기가 모두 없어지는 건 아닐 테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내 마음도 편했다.


그때부터 몸에 밴 청소 습관은 인도에까지 이어졌다. 아줌마가 있었어도 내가 한번 더 손을 대야 했다.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그 습관은 계속되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토피는 많이 나았지만 아기 때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재발이 될까 봐 늘 신경이 쓰였었다.


성인이 된 작은딸은 아토피가 언제 있었나 싶게

피부가 깨끗하다. 타고난 뽀얀 피부만 믿고 관리 안 하는 언니보다 부지런히 관리하는 작은딸이 피부는 더 좋아졌다. '아토피만 아니었으면, 크면서 잠을 잤더라지금보다 키가 컸을 텐데' 혼자서 생각하곤 한다. 언니만큼 안 큰 작은 딸의 키가 아토피가 원인이었나 싶어서 속상할 때가 있다. 다행히 자존감 높은 딸은 키에 불만이 없다. "키는 서 뭐하게?"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바닥에 먼지 하나 못 보던 내가 이제는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그 먼지를 모두 견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질을 해야 했는데 요즘은 아예 손걸레라는 것이 없다. 청소기 대충 돌리고 청소포 끼워서 밀대로 한번 휙. 그것도 일주일에 두어 번이면 된다. 처음엔 발바닥에 밟히는 작은 먼지들이 견디기 힘들어서 팔이 아픈데도 왼팔로라도 청소를 해야 했고, 정리 안된 집은 볼 수가 없어서 남편, 딸들이 아내, 엄마의 잔소리를 모두 받아내야 했다.


오른팔 팔꿈치에 '테니스 엘보'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당분간 팔을 안 쓰는 게 좋다고 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고, 안 하게 되니 그게 또 습관이 되었다. 팔은 다 나았지만 원래대로는 돌아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럴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


딸들이 하는 청소가 성에 차지는 않지이제는 마음 편히 그것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쁘게 출근하느라 엉망이 되어있는 큰딸 방을 그대로 내버려 둬도 신경이 안 쓰이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매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게 되었다. 


작은 딸의 아토피 때문에 생긴 나의 청소병은 딸이 아토피가 다 낫고 나서  몇 년이 지난 최근에야 사라지고 있다. 팔꿈치가 아프고 나니까 내 몸은 내가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실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적응이 되고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그 일에 시간과 체력과 정신을 쏟을 게 아니었다.


딸의 아토피보다 나의 청소병이 더 깊었던 것 같다. 습관이 집착이 되었었다. 이유가 사라졌음에도 불안함에 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놓고 나니 이렇게 편한 것을.


힘든 시간을 잘 견뎌준 딸이 대견하다. 전쟁 같았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견뎠더니 치료가 되었고, 견뎠더니 치유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전업주부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