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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05. 2024

식물을 가꾸었더니 곤충이 덤으로 왔다

4,5월, 봄꽃이 만발할 때는 색색깔 예쁜 꽃들에 빠져서, 몇 천 원짜리 화초를 사다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서 옮겨 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6,7월, 기온이 올라가니까 꽃들도 못 견디고 시들어버려서 화려한 색깔의 꽃들은 점점 줄어들고, 내 작은 정원은 그 자리에 초록잎이 무성해져서 그 나름의 풍성한 식물들을 즐기게 해 주었다.


8, 9월, 유례없던 무더위와 긴 장마로 몇몇 식물들은 잎이 마르고, 뿌리가 썩고, 해충 피해를 입고 말았다


비록 3평 정도의 작은 정원이지만 꽃이 피고 지고, 잎이 나고 시들고, 열매가 맺고 떨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코 앞에서 매일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정원의 크기와 상관없이 가꾸는 재미에 빠져 지내는 중이다.


그런데 이 작은 정원에는 내가 가꾸지 않은, 의도하지 않은 귀한 손님들이 또 있다. 꽃과 나무, 풀과 열매, 식물을 가꾸었을 뿐인데 여러 신기하고 재미있는 곤충들이 찾아온다.


벌, 나비, 달팽이, 민달팽이, 콩벌레등 익히 알고 있던 곤충뿐만 아니라 쌍살벌, 장수잠자리, 대왕거미, 알락하늘소, 쐐기벌레와 이름 모를 각종 곤충들이 내 작은 정원을 찾아오고 있다.



정원이 작아서 그 모든 곤충들이 바로바로 눈에 띄어서 세심히 관찰도 하게 된다.


목련나뭇잎에 집을 짓고, 알을 까고, 새끼를 돌보던 쌍살벌의 모성애를 한 달 내내 관찰할 수 있었고, 대추나무에 쳐놓은 큰 거미줄에 걸린 버둥대는 벌을 거미줄로 꽁꽁 싸매는 대왕거미의 섬세함과 거미줄로 돌돌 말아 두었던 벌레를 한 입에 털어 넣는 대왕거미의 먹성을 신기해하며 볼 수 있었고, 폭우를 피해서 벽을 타고 힘겹게 올라가는 알락하늘소의 기개를 보았고, 에메랄드 빛 눈알을 굴리며 검정바탕에 진한 노란색 줄무늬의 강렬한 자태를 뽐내던, 목백일홍 위에 앉아있던 장수잠자리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체리나뭇잎을 만지다가 일렬로 귀엽게 다닥다닥 붙어있던 쐐기벌레의 침에 쏘이는 경험도 해봤다.



나비, 벌, 잠자리는 흔하게 찾아오는 손님들이고, 달팽이, 민달팽이, 무당벌레, 돈벌레등은 아예 내 정원에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까치, 참새, 목소리가 고운 이름 모를 작은 새까지, 내 작은 정원에는 방이 비좁을 만큼 다양한 새와 곤충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장소가 되었다.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도 즐거운데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곤충 손님들 덕분에, 나는 내 집을 나서지 않아도, 며칠 동안 대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3평 작은 정원은, 아파트를 벗어나서 얻게 된 내 작은 땅은, 화초를 가꾸는 즐거움에 신기한 곤충들을 관찰하는 재미까지 덤으로 선물하고 있다.


가을이 되었다.

진한 붉은색 몸통에 연한 오렌지색 날개를 가진 고추잠자리가 무더위와 장마를 견뎌내고 꼿꼿하게 보라색 꽃을 뽐내는 마편초 위에 앉아있다.



계절 따라 다른 곤충이 여전히 내 작은 정원을 찾고 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주택살이의 즐거움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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