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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Oct 22. 2024

백일홍과 백일홍

갑자기 결정한 주택으로의 이사, 그리고 급하게 가꾸게 된 작은 정원이었다.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정원을 가꾸기 전에는 식물에 대한 상식이 전무했다.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식물을 다루는 지식 습득은 다음의 일이었다.


화원에서 파는 꽃과 나무는 모두 저만의 이름이 있었는데, 내가 아는 이름은 별로 없었다. 그 많은 식물들 가운데 내 눈에 띄어서 우리 집 정원으로 옮겨심기는 식물들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았다. 대부분이 우리말 이름이 아니어서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안에서만 맴돌 뿐, 선뜻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외국어 이름이 많아서 기억하기 힘든 것뿐만 아니라, 비슷하거나 같은 이름이 간혹 있어서 그 또한 문제였다.

백일홍이라는 나무가 그 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본 적은 있었겠지만 나무의 이름은 모른 채 봤을 것이 분명하다.


작은 정원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제법 큰 백일홍 나무를 심었다. 동생집 나무를 보고 예뻐서 무리를 해서 가져다 심었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백일동안 꽃이 핀다는 백일홍은 홍자색 꽃을 마구 피어댔다. 감탄하고 감탄하며, 이전의 어떤 들보다 마음에 두는 꽃이 되었다.

그런데 그 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긴 장마에 병충해를 입은 것이다.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내 탓이었다. 붉게 하늘을 덮었던 꽃은 채 한 달도 못 가서 모두 떨어져 버렸고, 더 이상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


백일홍, 목백일홍, 배롱나무


그 때문에 동안 크게 마음이 상해서 정원을 돌볼 여유가 생기지 않던 어느 날, 집 뒤편 화단에 예쁜 꽃들이 펴있는 것을 발견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나서 초록 새싹이 올라온 지 한참이 지난날이었다. 노랑, 분홍 꽃이 햇볕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며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 꽃 이름도 찾아보니까 '백일홍'이라고 나와있었다.


'백일홍이라고? 이게 왜 백일홍?'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백일홍에 대해서 다시 검색을 해봤다.


이름이 같은 두 가지의 백일홍이 있었다.

목백일홍과 꽃백일홍이라고 구분되었는데, 목백일홍은 흔히 '배롱나무'라고, 꽃백일홍은 '백일초'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배롱나무는 흰색과 홍자색꽃을, 꽃백일홍은 분홍, 주황, 빨강, 노란색의 꽃을 피운다고 했다.

 배롱나무와 백일초는 같으면서 다른 이름이었다.


백일홍과 백일홍, 목백일홍과 꽃백일홍, 배롱나무와 백일초, 같은 이름, 다른 꽃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백일홍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것이었다.

백일홍, 꽃백일홍, 백일초


내 작은 정원은 예쁘다며 감탄을 하며 바라봤던 홍자색 백일홍이 떨어지고 나서, 노란, 분홍 백일홍이 다시 피고 있었다. 하늘을 덮었던 백일홍꽃은 병충해를 입고 말았지만, 몇 포기를 캐서 정원에 옮겨 심은 백일홍이 대신해 주었다.

아침마다 물을 주며 정성을 들였더니, 그 꽃백일홍은 키가 쑥쑥 자라고 꽃대도 많이 생겨서 배롱나무꽃을 대신하고도 남았다.


튼튼한 목백일홍은 병충해를 입었지만, 연약해 보이는 꽃백일홍은 추워지기 시작했어도 여전히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하나가 가니까, 또 다른 하나가 내 정원을 꾸며주었다.


크게 기대했던 일이 쉽게 실망을 줄 때가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쁜 일이 생길 때가 있다. 실망 뒤에 예기치 않게 찾아와서 더 기쁠 때가 있다.


작은 정원에서 수시로 인생을 배운다.

우리 집 작은 정원의 배롱나무와 백일초가, 목백일홍과 꽃백일홍이 그런 경험을 하게 했다.


내년에는 하늘에는 홍자색꽃 백일홍이, 땅에는 노랑, 분홍, 주황, 빨간색꽃 백일홍이 내 정원에서 튼튼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본다.

실망하는 일 없이 기쁨만 있기를 바라본다.

내 정원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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