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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정원에 봄이 돋고, 여름이 피고, 가을이 물들다.

겨울을 맞을 준비 중인 내 3평 정원은 노랗거나 붉거나 갈색이거나 혹은 얼룩얼룩한 나뭇잎이 물기란 물기는 모두 날려 보내고, 한없이 마르고 말라서 작은 바람에도 나풀나풀 흩날리고 있다.


한 점 봄 볕에도 꽁꽁 언 땅과 단단한 가지를 뚫고 여린 싹을 돋아내더니, 거친 비바람, 뜨거운 태양과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는 예쁜 꽃을 피웠고, 차가워진 밤공기와 따뜻한 낮볕에 어리둥절 적응하느라 애쓴 보람은 알록달록 단풍으로 색을 입었다.


봄 새싹도 예뻤고, 여름 꽃도 아름다웠지만, 가을 단풍은 화려한 마지막 인사 같다.

내 3평 정원의 식물들은 그렇게 봄, 여름을 보냈고, 가을을 지나는 중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리라 다짐이라도 한 듯이 나뭇잎은 근면하게 나뭇가지에서 분리되고 있다. 쓸고 쓸어도 쌓이는 낙엽을 어찌할 수가 없다.


봄의 정원


차갑고 단단했던 겨울의 땅에도 햇볕 한 점의 희망이 찾아왔고, 거센 비바람과 타들어갈 듯한 태양 열기를 견디고 견뎠더니 누구보다 아름다운 성과를 얻게 되었고, 갑자기 찾아온 찬 공기에 적응할라치면 어느새 따가운 볕을 맞아야 했던 인내의 시간은 화려함을 선물해 주었다.


그 시간들을 함께한 내가 본 작은 정원의 식물들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자연도 그럴진대, 자연이 그러할진대 사람이랴.

창조주가 만들고 나서 보기만 해도 심히 좋았다는 사람이랴.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은 갖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그 이겨낸 시간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결국엔 화려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는가 싶다.


꽃보다 단풍이 화려하다는 생각은 청년의 시간보다 중년과 노년의 시간이 더 화려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자연이 그러하듯이 인생도 그러할 것으로 믿고 싶다. 견디고 견딘 시간이 결국은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라 믿고 싶다.

나의 중년과 다가올 노년도 그러할 것이라고.


내 3평 정원은 봄이 돋았고, 여름이 피었고, 가을이 물들고 있다. 겨울로 향하고 있다. 작은 정원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켜보면서, 매 순간이 빛나는 순간이라 믿으며 살다 보면, 더 빛나는 시간이 맞아줄 것을 믿게 된다.

시련은 사사로울 뿐, 견디고 나면 결국엔 예쁜 꽃과 화려한 단풍을 만들게 될 것이라 믿게 된다.


여름의 정웡


자연의 나이는 겨우 9개월, 봄부터 가을까지인가 싶다. 아직 겨울의 내 정원을 지나보지 않아서, 내가 눈으로 보고 인지한 것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땅 속에서의 3개월, 가지만 남은 앙상한 모습의 3개월의 겨울은 잉태의 기간일까?


가을의 정원


나에게는 아직 무엇보다 화려한 단풍의 계절이 남아있다. 기온차가 클수록 더 아름다울 그 계절이 기다리고 있다.

내 노년의 시간이 충분히 풍성하고 아름다우려면, 내 중년의 시간이 더 따뜻하고, 더 차가워야 하나보다. 평안뿐만 아니라 시련도 필요한 이유인가 보다.


내 3평 정원의 새싹과 꽃과 단풍이 꼭 내 인생 같다.

나는 지금 화려한 단풍이 되려고 찬공기도, 따뜻한 볕도 지혜롭게 이겨내고, 감사하게 맞이하고 싶다.


다시 봄이 오면 어린아이의 탄생과도 같은 어린 새싹을 보게 될 것이다. 작은 정원을 사랑으로 가꾸다 보면 어린 새싹은 꽃으로, 단풍으로 빛날 것이다.


올해는 겨울의 정원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을 지낸 내 작은 정원의 내년의 봄이, 여름이,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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