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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20. 2024

견딘 시간이 꽃으로 피어나다.

유별나게 비가 많이 내렸고, 유달리 무더웠던 올해 여름이었다.

도대체 가을이 오기나 할까 싶더니 귀뚜라미 소리를 알람처럼 울리며 가을 공기 냄새는 창문을 넘어 코 끝에 닿고 있다.


내 3평 정원의 식물들도 길었던 장마와 더 길었던 무더위에 속수무책 힘들어했다. 과습으로 죽기도 하고, 병충해에 잎이 마르기도 하고. 한낮의 뜨거운 땡볕에 말라버리기도 해서 한국에 온 4월 이후로 가장 볼품없는 정원이 되어버렸다.


'올해 내 정원 식물들은 이대로 모두 시들고 말겠구나, 가을에 국화를 좀 가져다 심기 전에는 꽃이라고는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기대를 접을 즈음이었다.

비가 그치고, 무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다시 생기를 찾은 식물들이 하나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장미꽃이 하나씩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고, 꽃백일홍이 주홍, 노랑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패랭이도 진분홍꽃이 초록잎 위에 다시 얹히기 시작했다. 큰꿩의 비름은 수백 개의 핑크별을 매달고 나비를 불러들이기 시작했고, 씨앗을 심은지가 언제인데 맨드라미가 이제야 빨간 꽃을 피웠다.

그 예쁘고 화려했던 배롱나무 꽃들도 병충해로 모두 떨어지고 말았는데 시나브로 한두 개씩 주홍꽃을 하늘높이 띄웠다.

비바람에 쓰러졌던 버들마편초는 언제나처럼 다시 꼿꼿이 목을 세우더니 귀여운 보라색꽃을 하늘 높이 쳐들었고, 언제 씨알이 굵어지나 싶었던 대추가 하루가 다르게 여물었다.


자연은 그랬다. 나만 실망했고, 나만 포기했다.

사람의 생각은 한계를 두었지만 자연은 예측대로만 나아가지 않았다.


비가 그렇게 쏟아부었고, 무더위가 질기게 오래 괴롭혔지만 그 모든 시간을 견뎌 낸 나무와 꽃들은 마침내 꽃을 또 한 번 피워내었다.


안될 거라고, 힘들 거라고, 결과가 뻔하다고 지레 포기하려 했던 마음이 긴 시간 동안 비와 폭염을 견딘 정원의 꽃들을 보면서 견디면 언젠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내 3평 작은 정원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자연을 통해서 배운다.


내가 견딘 그 시간들도 작은 패랭이 꽃 한 개 일지라도 반드시 언젠가 피게 될 것이라 기대하며 힘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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