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09. 2022
요즘 부쩍 작은딸의 잔소리가 늘었다. 딸은 스물일곱, 엄마는 쉰일곱 살이다. 쉰일곱이면 아직은 생생한 나이인데 스물일곱 딸은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여든일곱 엄마에게 쉰일곱 딸이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여든일곱이 되면 오히려 딸 잔소리를 덜 듣게 될까?
"요즘 청소 너무 안 하고 사는 거 아니야?"
"엄마, 이건 덮어 놔야지. 날씨가 더워져서 초파리 생긴단 말이야!"
"먹을 생각이면 미리 말해! 요리 시작하면 엄만 꼭 그러더라"
"안 입는 옷은 그냥 버리면 안 돼?"
"영양제 사 준 거 또 안 먹고 있지?"
"사고 싶으면 사! 뭘 그렇게 오래 고민해?"
딸의 잔소리가 끝도 없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내가 딸이고 자기가 엄마 같다.
팔꿈치 관절이 한번 아프고 난 뒤로 청소기나 밀대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중이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있는 집도 아니고 내 건강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과 한 개를 깎아서 다 못 먹고 접시에 담아서 식탁에 올려놨었다. 오며 가며 딸이 먹을까 싶어서였다. 안 보이면 안 먹게 되니까.
늦게 일어난 딸이 아점을 먹으려고 파스타를 만들길래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리도구 사용하는 김에 2인분을 하라고 한 거였다. 설거지거리를 줄이자 싶어서였다.
옷장 정리를 하다가 외출복으로는 더 이상 안 입을 옷이지만 집에서 입기에 괜찮을 면 원피스 두어 장을 따로 빼놓은 것이었다.
발톱 무좀약 복용 중이어서 간에 무리가 갈까 봐 영양제는 당분간 안 먹고 있었다.
핑크색 옷이 필요해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블라우스를 발견했었다. 평소에 잘 안 입는 컬러여서 고민 중이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딸은 엄마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일을 나이가 들어서 예전 같은 섬세함이나 결단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작은딸은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에 살림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이다. 관심이 있고 잘 알아서 눈에도 보이고 잔소리도 하게 된다는 걸 나는 안다.
이유가 있는 엄마의 행동이 자기 눈에는 나이가 들어서 예전 같지 않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잔소리하는 목소리에 묻어있는 '속상함'을 느꼈다.
예전처럼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는 아니지만 딸의 생각처럼 모르고 놓치며 사는 것은 또 아니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관절이 약해져서 조심하느라 부지런을 덜 떨 뿐이고, 삼십 년 가까운 주부 경력으로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다.
딸아. 엄마,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 그런데 엄마는 네 잔소리가 마냥 싫지만은 않더라. 네가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를 걱정하고 가르치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서 흐뭇하기도 해.
나도 딸일 때가 있었어. 딸 노릇도 해보고, 엄마 노릇도 해 보니까 딸이 더 좋은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네가 엄마 해! 내가 딸 할게!
딸을 보며 내가 딸이었던 울 엄마 생각이 났다. 잔소리 듣던 그 딸도 그립고, 잔소리하던 그 엄마는 더 그립다. 잔소리하던 그 딸도 그립고, 잔소리 듣기 싫어하던 그 엄마는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