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08. 2022
"엄마! 오늘 글짓기 상 받았어!"
"엄마 있잖아 올챙이를 3마리나 잡았어"
"엄마! 지민이가 넘어졌는데...."
"엄마! 선생님이..."
"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작은딸은 아파트 15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하굣길에 날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래에서 말하는 소리는 다른 소음들과 섞여서 15층의 엄마에게는 사실 잘 들리지는 않았다. 집에 온 딸에게 다시 물어서 알게 되는 내용들이었다. 잘 안 들리니까 길에서 소리치지 말고 집에 와서 말하라고 해도 딸에게는 1분 1초라도 빨리 엄마에게 얘기를 해 주고 싶은 뉴스들이 많았다. 말수가 적었던 큰딸과는 참 다른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들으며 영민했던 큰딸은 시험문제 1개만 어려웠어도 오늘 시험 어려웠다고 말하는 반면에 항상 시험문제가 너무 쉬웠다며 자랑하던 작은딸이었다. 결과는 늘 언니는 만점, 동생은 두어 개 틀린 시험지를 들고 왔었다. 2개밖에 안 틀렸다면서 2개를 왜 틀렸는지 쫑알쫑알 설명하는 그 이유를 또 들어줘야 했다.
애교가 많던 딸은 수시로 엄마에게 하트와 드레스 입은 공주가 그려진 사랑의 편지도 보냈고, 자기도 아토피 때문에 힘들었지만 엄마가 잠을 못 자서 피곤해하는 것에 늘 신경을 쓰고 예쁜 말로 힘을 주곤 했다.
아빠를 유독 좋아하고 따르던 아빠 껌딱지였던 작은딸은 가족 외출 때는 당연하게 아빠 손을 차지했고, 자연스럽게 큰딸은 엄마 손을 잡아야 했다.
"엄마가 좋아? 아ㅃ..." ,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딸의 대답이 날아오곤 했다. "아빠가 좋다고! 아빠가 좋다고! 왜 자꾸 물어?" 흐뭇해하던 아빠와 더 흐뭇해하던 엄마였다. 큰딸이 엄마를 잘 따랐기 때문에 아빠 껌딱지인 작은딸은 엄마인 나도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집이 조용할 때가 없었다. 작은 딸의 수다가 늘 집안에 가득했다. 과묵한 편인 아빠는 자기와 다른 그런 딸을 많이 귀여워했다. 그런 딸이었다.
밝고 애교 많고 수다스럽고 싹싹했던 딸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성인이 된 지금은 어렸을 때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말수가 줄었고, 이성적으로 변했고, 요즘 아이들이 거의 그렇듯이 다소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감성적이던 아이가 논리적으로 변했다.
밖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집에서의 딸의 모습은 어릴 때의 그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큰딸과 엄마는 손도 잡고 길을 걷고, 같이 카페에서 수다도 떠는 사이이지만 작은딸 손을 잡고 길을 걸어 본 적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이다.
카톡 대답에도 애교라고는 없다. 엄마의 질문에 0.1초 만에 날아오는 큰딸의 애교 섞인 말투와 이모티콘과는 거리가 멀다. 꼭 필요한 대답만 건조하게 돌아올 뿐이다.
작은딸은 누가 봐도 엄마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대체로 외모가 닮으면 성격도 닮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딸의 그런 성격이 엄마를 닮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내가 그 나이대였을 때를 돌아보면 밖에서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배려도 잘하고 얘기도 잘 들어주고 부탁도 잘 들어주는 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입을 닫았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냥 쉬고 싶었다. 자상한 아버지에게는 그나마 착한 딸이었는데 나랑 성격이 같은 엄마와는 늘 부딪혔다.
작은딸이 지금 나에게 대하듯이 나도 그런 딸이었다. 다른 곳에서 풀지 못했던 감정들을 좋은 사람 역할을 안 해도 되는 엄마 앞에서 모두 쏟아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작은딸의 그런 심리를 이해는 한다. 밖에서는 마냥 좋은, 인정받는 아이일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해하는 것과 섭섭한 것과는 별개이다. 나는 그런 딸이었으면서 딸에게는 그런 딸이 아니기를 바라는 엄마의 욕심일지라도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말로 하는 표현은 잘 못하는 딸이지만 행동으로는 사랑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잔소리가 많은 이유도 엄마, 아빠를 염려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관절이 안 좋은 엄마에게 고가의 건강식품을 사다 주고, 아빠에게 각종 마사지기를 선물하고, 운동화며, 화장품이며 지켜보고 있다가 엄마 이빠에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은 알아서 사다 놓는다.
아침마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주던 딸은 커피 좋아하는 아빠에게 캡슐커피 머신을 선물하고 독립을 했다. 떨어질 쯤이면 캡슐을 꼭 주문해 놓는다.
돈은 벌지만 아직은 학생이라고 핑계를 댈 법도 한데 가족을 위해서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딸이다. 말로 하는 표현이 더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 이해는 한다.
어렸을 때의 애교 많고, 표현을 잘하던 딸의 기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눈물이 많은 딸은 여전히 정이 많고, 사랑이 많고, 배려심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때로 많이 변한 딸의 성격에 섭섭할 때가 있지만 그 내면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엄마는 어렸을 때의 그 딸이 그립기는 하다. 싹싹하고 애교 섞인 말 한마디가 그립다. 욕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딸을 찾습니다.
싹싹하고 애교 많던 내 딸은 어디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