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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16. 2022

재잘재잘, 삐약삐약

아침 공기를 쐬려고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바깥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정도로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성능 좋은 아파트의 새시가 미세하게 열림과 동시에 '재잘재잘' 병아리 소리가 들렸다.


'재잘재잘' 왜 병아리 소리라고 느껴졌을까? 귀에 닿은 소리는 '재잘재잘'이었는데, 마음에 들어온 소리는 '삐약삐약'이었다.

꼬맹이들 소리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데 삐약삐약 병아리들이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기분 좋은 소리, 생기 있는 소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리, 어린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병아리들을 구경하려고 활짝 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조용한 동네의 아파트 입구에 유치원 버스가 보였고, 병아리들의 귀여운 뒷모습들이 보였다.

병아리색 등원 버스 앞으로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인솔을 기다리며 하나둘 모이는데 뭐라고 자기들끼리 쫑알대는 소리가 마치 병아리 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삐약거리는 것 같았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꼬마들은 뒷모습에도 귀여움이 묻어있었다. 동글동글 뒤통수도, 작은 체구도, 체구에 비해 큰 가방도 귀여웠다. 그 귀여운 모습의 아이들이 삐약삐약, 아니 재잘재잘대는 소리에 순수함이 전해져 왔다. 그 아이들의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보다. 나에게는 더 이상 없는 고귀한 가치, '순수함' 때문이었나 보다.


강아지, 송아지가 더 귀엽고, 병아리가 더 귀여운 것처럼 어릴수록 아이들도 더 귀엽다. 그래서 '귀엽다'는 '어리다'를 내포한 말이고, '어리다'는 '순수하다'가 포함된 단어인 것 같다. 어릴수록 더 귀여운 이유가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쑥덕쑥덕'이 아닌 '재잘재잘'. '구구구구'가 아닌 '삐약삐약'. 세상과 나를 단단히 막고 있던 무거운 새시의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그 소리는 순수함의 가치를 들려주고 있었다. 기분 좋은 소리, 마음이 깨끗해지는 소리였다.


갑자기 우리 두 딸의 꼬맹이 시절이 그리워졌다. 어려서 귀여웠고, 어려서 순수했던,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던 딸들이 보고 싶어서 사진첩을 뒤졌다. 흐릿한 사진이 희미한 추억을 들춰내 주었다. 병아리 소리가 사진에서 들리는 듯했다. 더 이상은 들을 수 없는 그리운 어린 딸들의 소리였다. "삐약삐약", "재잘재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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