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14. 2022

사탕, 그리고 울 엄마


가수 콘서트에 다녀왔다. 친구와의 동행이었지만 티켓팅이 녹록지 않아서 각각 멀리 다른 좌석에 앉게 되었다.

넓은 실내 체육관 안의 복도 끝 좌석 옆으로 세분의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계셨는데, 앉으면서 옆 좌석 어르신께 인사를 했더니 그 어르신, 계속 계속 말을 붙이셨다. 80대 이시고 친구 사이라고 했다. 친구분의 딸이 콘서트 티켓을 끊어줘서 구경을 오셨다고 했다. 80대에 친구들끼리 가수 콘서트도 다니시는 어르신들,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 젊은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에 다니는 일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자녀들이 효도 차원에서 구해 드린 티켓을 들고 부부, 자매, 친구들과 콘서트장을 찾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날도 내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이 보였다. 나처럼 특정 가수의 팬은 아니지만 두루두루 관심이 있는 분들이었다.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이지만, 관객들은 대체로 나이대가 있지만, 가수가 젊다 보니 콘서트 문화도 아이돌 가수 콘서트 못지가 않다. 대형 팬덤을 지닌 가수의 팬들은 색색깔 팬덤 색깔의 응원봉을 들고, 팬덤 칼라의 옷을 입는 일이 기본이 되었다.


친구 두 분은 주변의 팬들이 준 응원봉을 들고 계셨는데 옆자리 어르신만 빈 손이었다. 이왕 오셨는데 더 재미있게 콘서트를 즐기고 가시라고 내가 가지고 있던 분홍색 별 모양 응원봉 하나를 드렸다. 별것 아닌 것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

 

공연 내내 말동무도 해드리고 이것저것 불편해 보이는 것들을 챙겨드렸더니 공연이 끝나고 어르신이 뒤적뒤적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지는 몰랐지만 안 주셔도 된다고 도로 드리려는데 기어코 내 손을 벌리면서 다시 쥐어주셨다. 뭔가 싶어서 펼쳐봤더니 꼬깃꼬깃 사탕 세 알이었다.


그런데 나는 순간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어르신의 손 감촉이 잔열처럼 내 손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런지 생각을 해봤다. 겨우 사탕 세알, 그랬다. 그것은 사탕이었다.


늦둥이 막내딸인 나는 남들보다 일찍 친정 부모님을 여의었다. 우리 딸들이 초등 저학년 때 돌아가신 친정 엄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 사탕을 가까이에 뒀었다. 머리맡에도, 식탁 위에도, 문갑 서랍 안에도, 교회 가방에도 늘 사탕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입이 마르고 기침이 나서 사탕을 물게 된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외손녀들 앞에 항상 사탕을 꺼내 놓았었다. 어린 손녀들에게 사탕은 엄마는 못 먹게 하지만 외할머니 집에서는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달콤한 행복이었고, 외할머니를 좋아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막내 사위는 종류별로 사탕만 사들고 가면 장모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편한 사위노릇이 사탕 때문에 가능했다.


시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은 적이 있었다. 퇴원을 해서 집에서 조리 중이었는데 엄마가 병문안을 왔었다. 손에는 커다란 사탕 봉지가 들려 있었다. 시어머니가 애도 아니고 사탕을 왜 사 왔냐고 철없는 딸은 그 엄마에게 핀잔을 줬었다. 따로 봉투도 준비했었는데 그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시어머니보다 열댓 살 위였던 엄마는 본인 생각에 아프고 나면 입맛도 없는데 달달한 사탕이라도 하나씩 빨면 에너지 보충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사탕은 엄마에게 '나도 필요하고, 너도 필요할 것'이었다. 그렇게 사탕은 외할머니, 장모님, 엄마와의 추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가방 정리를 하는데, 뭔가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옆자리 어르신이 손에 쥐어준, 친구와  한 개씩 나눠먹고 남은 그 사탕 한알이었다.

사탕을 보는데 또 울컥했다. 그 사탕도 울 엄마의 사탕 같았고, 꼭 쥐어주시던 그 손의 촉감도 울 엄마 같았다.

어르신이 사탕을 손에 쥐어준 그 순간이 왜 내 가슴을 따뜻하게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어르신의 마음과 체온이 울 엄마의 마음과 체온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어르신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의 연배와 비슷해 보이는 그분은 건강하게 친구들과 가수 콘서트도 다니시는, 그 나이에 돌아가신 내 엄마가 안타까웠다.

살아계셨어도 구순이 훨씬 넘어서 같이 다니기는 힘들었겠지만 내 기억의 울 엄마는 콘서트장의 내 옆자리 어르신과 비슷한 나이로 남아있다.


같이 손잡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다니는 80대의 건강한 울 엄마를 상상해 본다. 엄마의 가방에는 외손녀가 어렵게 끊어준 콘서트 티켓과 딸이 사 준 핑크색 응원봉과 막내 사위가 챙겨  색색깔 사탕이 가득 담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 네가 엄마 해! 내가 딸 할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