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n 30. 2022
며칠 동안 하늘이 비를 쏟아붓고 있다. '호우경보 안전 안내 문자'가 번번히 날아오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뭄이 심해서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주의를 해야 한다. 산사태를 대비해야 하고, 침수를 신경 써야 하고, 농사 걱정을 해야 하고, 학교 가고, 직장 가는 길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과 크게 상관이 없는 입장인 나는 집에 앉아서 그저 빗소리나 들으며 감상에 빠지기 일쑤다.
나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빗소리가 그 한 가지의 경험이다.
한옥에서 국민학교 때까지 살았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책가방은 던져 놓고 툇마루 끝에 앉아서 아버지가 꾸며 놓은 작은 꽃밭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버지 나름의 미적 감각으로 아기자기 꾸며 놓은 작은 꽃밭은 날마다 돌멩이 위치나 꽃나무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의 취미 생활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비 다 맞으면서 꽃나무와 쌓아놓은 돌멩이가 쓰러질까 봐 늘 살피곤 했었다.
비가 내리면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꽃밭 정리하는 아버지의 웅크린 모습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만드는 투명 구슬 커튼 너머에 늘 있었다. 그 처마라는 것이 기와지붕 끝에 이어 붙은 물결모양 슬레이트였는데, 빗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 이유였다. 빗물은 길게 처마의 가로길이만큼 땅바닥에 홈을 파면서 작은 흙탕물을 튀기곤 했다.
툇마루에 앉으면 눈은 구슬 커튼 너머의 꽃밭을 살피는 아버지가 보였고, 귀는 슬레이트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고, 코는 비릿한 빗물 섞인 흙냄새가 맡아졌다.
비가 내리면 어렸을 때 그 집, 그 툇마루에 앉아있는 상상을 가끔 한다. 오늘도 나는 그 집, 그 툇마루에 앉았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땋아준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막내딸을 예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맨다리에 튀어 올라 다리를 간지럽히는 것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 곁에서 쫑알쫑알 말도 안 되는 잔소리하는 것을 아버지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엄마가 방에 들어가라는 말은 들은 체도 안 하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딸들에게 늘 다정했던 아버지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귀엽고 예쁜 늦둥이 막내딸이었다. 아빠에게 별의별 잔소리를 해대는 작은딸이 그래도 귀엽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내 남편, 딱 그 아빠의 막내딸 모습이었다.
"우리 정아, 누가 데려갈지 복덩이 데려간다"라고 늘 말해 주던 아버지는 내 나이 26살 때, 그 복덩이 데려가는 막내 사위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병이 깊었고, 주무시다가 돌아가셔서 가족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늘 면도를 하고 단정하게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4일 전부터는 아예 씻지도 앉고 면도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모습을 처음 발견 한 건 나였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엉엉 울면서 면도를 해드리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드렸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면도도 안된 그 얼굴이 아니길 바랐다. 평소의 단정하고 깔끔했던 그 모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덕분에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평소의 단정하고 깔끔했던 내 아버지 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가 내린다. 오늘도 나는 나의 국민학교 시절의 그 한옥집 툇마루에 앉아서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줄기 너머의 꽃밭을 본다. 웅크리고 앉아서 넘어진 꽃나무에 막대기를 대고 돌멩이를 받치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빗소리는 크고, 흙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내 발목을 간지럽힌다. 간지럽다며 요란을 피운다.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웃으신다. 귀엽다고 대신 말하는 아버지의 눈동자를 나는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