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ul 28. 2022
'빈 둥지 증후군' 면역력이 두 배로 상승하였습니다.
큰딸이 독립을 해서 집을 나간 지 6개월 만에 작은딸이 또 집을 나갔다. 같은 서울에서 달랑 넷인 식구가 둘, 하나, 하나, 각각의 거처를 가지게 되었다.
서울에 아파트도 많고, 오피스텔도 많은 이유에 우리 가족도 제공자가 되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더 멀어지고, 월세며 관리비며 많지도 않은 월급에서 뭉탱이 돈이 나가게 생겼는데도 기어이 독립을 한다며 서울 동쪽 끝의 집에서 서쪽 끝으로 거처를 옮긴 큰딸이었다.
좋은 점이 많다는 아이의 생각을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인도,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가족이 모두 떨어져 살다가 합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독립을 원하는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다.
독립한 지 몇 달이 흘렀고, 어떻게 사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을 정도까지 편안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작은딸이 독립선언을 했다. 학교가 너무 멀다는 이유였다. 대학원 학비는 국가에서 지원이 된다며 휴학 중에 모아 둔 학비의 일부를 오피스텔을 얻는 데 사용을 하겠다고 했다.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을 해야 하는 성격이 이번 일에도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6개월의 한시적이고, 잠정적인 독립을 결정했고 작은딸 마저 집을 나갔다.
오늘이 그 사흘째 되는 날이다. 걱정과 달리 흔히 말하는 '빈 둥지 증후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인도에서 살던 수년 전, 두 딸과 떨어져서 지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두 번째는 항상 더 쉽다.
결혼 후 1년 만에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연년생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회사가 있던 낯선 도시에서 혼자서 전쟁 같은 육아를 감당해야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두 딸의 양육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었고, 작은딸의 심각했던 아토피 피부염 치료 과정은 끝이 안 보이는 터널과도 같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아이들도 자랐고 이제 내 일도 좀 찾고 싶던 때에 남편의 인도 주재원 발령 소식을 접해야 했다.
10여 년 전의 '인도'라는 나라는 사는 일 자체가 큰 숙제였던 곳이었다. 남편이 힘들고 내가 어려운 건 문제가 아니었다. 사춘기 두 딸의 낯선 나라 적응과 새로운 학교 적응이 엄마인 나에게는 최대의 과제였다. 6~7년을 두 딸의 장래만 생각하며 살아내야 했다.
새로운 전쟁터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두 딸을 미국과 한국으로 모두 떠나보내게 되었다. 큰딸을 마국으로 유학 보낸 지 1년 반 만에 작은딸까지 한국으로 대학을 보내 놓고 보니 안 그래도 넓었던 인도 집이 얼마나 휑하니 빈집 같았는지 모른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늘 두 딸과 부대끼며 20여 년을 살았었다. 그 부대낀 시간의 양만큼 떠나보낸 딸들의 빈자리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나는 소위 말하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매일 아침 6시경에 출근을 하면 밤 10시나 되어야 퇴근을 하던 남편이었다. 토요일도 일을 했고, 휴일은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내 혼자였다. 남편의 일의 무게를 알고 있던 나는 남편에게도, 멀리 있는 딸들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교회 봉사와 인도 여행으로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었다. 갱년기 호르몬으로 인한 우울감까지 겹쳐서 그 해 한 해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딸들과의 두 번째 분리였다. 스무 살 때는 어쩔 수 없는 독립이었다면 스물여섯, 스무일곱 살의 독립은 본인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직장 선택도, 대학원 진학 결정도 각자의 몫이었고, 경제적인 독립도 이미 된 상태이다. 그러니 따로 살겠다는 그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처음이 아닌 일은 언제나 더 쉽다. 두 딸이 집을 떠난 것도 이번이 두 번째이고, 한국에서 큰딸의 독립을 이미 경험 한 나는 작은딸의 독립도 두 번째 겪는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 맞게 될 '결혼'이라는 또 다른 딸들의 독립은 더 잘 받아들일 자신이 생겼다.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니고, 무려 세 번째가 될 테니까.
'빈 둥지 증후군'도 면역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강해진 면역력 때문에 집 떠난 작은딸의 방문을 열어봐도 특별한 감정이 일지가 않았다. 이 넓은 방을 두고 그 좁은 방에 왜 가있는지 그것만 궁금할 뿐이었다.
귓가에서 "삐리리~" 컴퓨터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정아 님의 빈 둥지 증후군 면역력이 두 배로 상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