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 둔 야망
백 겹의 백색 알 하나,
겨울의 칼날을 피해서
땅 속 깊이 숨죽이며
오랜 시간 야망을 품었다.
봄의 부름을 받고
순백의 껍질을 조용히 찢고 나와
아직은 여린 초록의 순이
햇살의 손을 잡았다.
첫 숨은 싸늘했지만 달콤했고,
첫 빛은 눈부셨지만 따뜻했다.
볕과 바람, 비의 호위를 받으며
힘을 기르고 용기를 키웠다.
칼날 같은 초록의 잎을 세우고
때를 기다리며 말없이 꼿꼿이 섰다.
먼저 나선자들이 무참히 쓰러진
여름의 뜨거운 전쟁터 한가운데,
꽃잎 하나.
선연한 피를 토해낸다.
붉은 피 뚝뚝 흘리며
초록 정원을 지배한다.
백 겹의 갑옷으로 버텼고,
튼튼한 칼날로 저항했고,
진한 피를 흘리며 승리했다.
피보다 강한 향기가
마침내 세상을 지배한다.
화려한 봄꽃들이 더위와 장마를 못 견디고 모두 시들고 말았다. 인내하던 붉은 백합이 그제야 보란 듯이 펴서 초록 정원을 강한 색과 향기로 가득 덮고 있다.
자연이 그러하듯, 사람의 시간도 그러하다. 저마다의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