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시간

해를 본다


해는 언제나의 그것인데

새해의 해는 새로 창조된 것인 양 반긴다

그리하여

낡지도 헤지지도 않은

어제까지의 그 해는 헌 해가 된다


헌 해와 함께 지고 마는 시간이다

해가 지고 해가 뜨고 시간이 흐른다



해를 본다


가슴에 샘을 파고 깊이로 흐르는 시간

꽉 껴안고 절대 놓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이 영원히 나를 휘감고 있다


내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던

늙은 아버지의 두 눈에 우직 우직 눌러 담은 사랑이

막내딸 산후통 저린 팔다리를 밤새 주무르던

구부린 엄마의 아릿아릿 작은 손의 큰 온기가


세상 모든 얘기가 엄마에게 닿기를 바라던

작은 아이의 쫑알쫑알 어린 애교가

동생 아토피가 빼앗아 간 엄마의 웅크린 낮잠 위로 가만가만 덮이던 큰 아이의 애착 담요가


헌 해 속에 영원히 살아서

그 강렬한 빛이 새 해에도 이어지고 이어져서

나를 데운다

내 속의 샘이 따뜻하게 넘쳐흐른다



해를 본다


흐르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

깊이로 흐르는 묵직하고 뜨거운 시간이 늘 그곳에 있다

지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 또 다른 시간

과거가 멈춰서 미래까지 이어지는 그 시간


그 시간이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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