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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14. 2022

후진국에서 의미 있게 사는 법

인도에서 10년 이상 살고 온 내가 그 1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가 있다. 중의 하나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인도는 후진국이다. 후진국이라 함은 '국민의 대부분이 가난한 삶을 사는 나라'라는 얘기이다. 부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또 그 반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라가 인도이다.


수년 전만 해도 에서 신발 신은 사람을 거의 못 볼 정도였고, 몇 발자국 안 걸으면 바닥에 짐짝처럼 누워있는 노숙자를 보게 되었고, 홈리스 가족들동네 어귀마다 볼 수 있었다. 차가 막히는 교차로에는 어김없이 아기를 들쳐 안고 차 문을 두드리는 여자 거지들이 나타났다. 인도 4대 도시 첸나이의 흔한 풍경이었다.


만 돌리면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던 인도에서 내 마음을 가다듬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처음 한동안은 보이는 대로 동전을 건넸고, 기회가 되면 봉사활동을 다녔다. 특별한 마음을 먹지 않아도 큰돈이 아니어도 로컬 교회나 슬럼가 동네나 고아원이나 가난한 여학생들의 기숙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했다.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누리고 사는 작은 의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우리 집 메이드 아줌마의 어려운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된 이후였다. 마하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사생활을 물어보지는 않고 지내던 중에 나에게 난처한 일이 생긴 어느 날이었다.


현관문 열쇠를 집안에 두고 외출을 하는 바람에 문을 잠그고 퇴근을 한 마하에게 열쇠를 받아와야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운전기사에게 마하 집을 알아보고 좀 다녀오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마하네 집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곳에 있다는 사실도,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바닷가 허름한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술주정뱅이인 어부 남편은 배를 타는 날보다 술을 마시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도, 마하가 힘들게 두 집에서 일을 해서 두 딸 공부도 시키고 살림도 건사한다는 사실도.


처음 첸나이에 갔을 때 한국 마담들에게 듣는 얘기가 있었다. 메이드와 기사에 관한 주의사항 같은 것이었다. 돈 얘기 많이 하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가불을 해달라고 하면 절대 해 주면 안 된다. 돈만 받고 안 오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에 없어지는 물건이 없는지 늘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고, 개인 사생활을 알게 되면 자꾸 도움을 받으려고 하니 절대 가족 얘기는 묻지도 마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도 조심을 했고, 개인적인 얘기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일이란 것이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이다. 마하의 가족 얘기와 그렇게 멀리서 힘들게 출퇴근을 하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부터 자꾸 마음이 쓰였다. 멀리 찾아가서 모르는 사람을 도울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내 주변 사람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 메이드와 운전기사에게 눈을 돌렸고 소소한 것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마하 딸들 학비는 중고등, 대학까지 조금씩 지원을 해줬고, 물난리가 나면 복구비도 보탰고, 이불이며 옷가지며 살림살이며 필요한 물건을 챙겨줬다. 장을 보러 가면 운전기사 손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과자나 과일을 들려줬다. 기억은 잘 안나는 10년 동안의 작고 큰 일들이 많았다.

나에게는 은 돈, 작은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많은 돈, 큰 일이었다. 사소한 챙김이 신뢰가 되었고 아줌마도 기사도 나를 더 믿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었다.


한 가지 선은 지켜야 했다. 그들 수준에 너무 과한 지원은 하면 안 되었다. 내 기준이 아니라 그들 기준의 지원이어야 했다. 정 많은 한국 마담들 중에 그 선을 지키지 않았다가 소위 뒤통수를 맞는 경우를 종종 다. 예를 들면 우리 기준에는 비싸지가 않은 인도 학비는 전액을 다 지원해 줘도 부담이 안 되는 금액이지만 반만 지원하고 반은 가불을 해줘서 10개월 동안 월급에서 갚게 한다던지, 피자를 평생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기사에게는 비싸서 못 사 먹는 음식인 피자나 햄버거를 아들 생일 선물로 사줘서 그날은 온 가족이 비싼 음식을 먹는 날로 만들어 주는 식이었다. 두고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한 예이다.


마하 아줌마는 10년, 기사 존슨은 7년을 함께 했다. 1년을 데리고 있기 힘들다는 인도에서의 메이드와 운전기사인데 나는 그 긴 세월을 같이 할 수 있었다.

물론 경제적인 도움만이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서 괜찮은 사람을 만난 이유가 제일 컸을 테고, 예민하거나 까다롭지 않은 나의 타고난 성격도 영향을 미쳤을 것도 같다.


한인교회를 통하거나, 모임을 만들거나, 또는 개인적으로 한국 마담들은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 가난한 나라에서 누리고 사는 외국인으로서의 작은 책임감 같은 것이었나 보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야만 내 마음도 편했다. 그들을 위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멀리 가서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는 일보다 내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챙기며 살았던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11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을 하고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자기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운전기사 존슨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 후에도 연락을 해 오는 인도의 운전기사 얘기는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마하 아줌마와도 최근에 연락이 닿았다. 마담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는 그 말에 울컥했다.

 

학교라고는 못 가 본 마하 아줌마의 두 딸이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도 다니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도, 도시 생활이 힘들어서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며 고민하던 존슨이 자녀교육을 위해서 첸나이에 남기로 했고, 시골에 작은 땅을 사뒀다는 이야기도 내 가족의 좋은 소식처럼 기쁜 이유가 그 결과물에 나도 아주 작은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있기 때문이다.


후진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사랑이었다. 당장 병원비가 없고, 자녀 학비가 없는 사람에게 호텔 조식 몇 번 안 가면 되는 돈이 그들에게는 너무 큰 사랑이었다.


후진국에서 현명하게 사는 지혜, 그들도 좋고 나도 좋은 일, 바로 내가 데리고 있는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일이었다. 인격적으로 대하고 경제적인 도움도 주면서 사는 일이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일 뿐이지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며, 나에게 푼돈이 그들에게는 자녀의 미래를 바꾸는 큰돈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인지상정이다. 보편적인 사람 사이의 정서나 감정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다르지는 않다.


존슨이 아들 생일 사진과 딸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왔다. 어떤 이는 마담이 또 돈을 부칠 것 같아서 자꾸 그런 사진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7년의 시간을 그들이 알고 하는 소리는 분명히 아니다.


아들과 딸이 커가는 모습을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지켜본 엄마 같은 마담에게 보여 주려는 그 아이의 마음인 것을 나는 안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두 아이에게 주는 축하의 용돈 몇 푼이 아깝지는 않다. 존슨의 안부 인사가 나는 너무 고맙기 때문이고, 그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다.

마하의 두 손주에게도 작은 선물을 하고 싶어서 수소문을 해서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 난 내 마음에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행복이 찾아왔다.  


운전기사와 메이드만 잘 만나면 인도 생활의 반은 해결된다고 할 정도로 인도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 잘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그들은 좋은 마담 만나기가 쉬울까?


후진국, 인도에서 의미 있게 사는 하나의 방법은 멀리 찾아가는 봉사활동에 앞서서 내 가까운 사람부터 챙기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작지만 그들에게는 큰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보편적인 정서의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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