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14. 2022

갠지스 강이 흐르는 삶과 죽음의 도시 '바라나시'(1)

인도를 떠나면서 하는 인도 여행(12)



자이살메르에서 뉴델리 공항 가는 길


 자이살메르의 매력적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 소형 비행기에 오른 우리는 경유지 뉴델리 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황무지 위를 날다가 점점 구름 위로 올라간 비행기 안에서 우리의 북인도 여행 마지막 도시, 바라나시를 상상도 하며 들뜬 마음이 되었다.

아무리 좋았어도 라자스탄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이제는 아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르는 곳, 처음 가는 곳, 그래서 예측이 안 되는 바라나시가 기대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기내식 컵라면과 망고주스는 북인도 여행을 떠났던 첫 날을 떠올리게 했다. 일주일 전에 첸나이에서 자이푸르로 가면서 탔던 같은 indigo 항공이었다. 같은 음식은 같은 마음이 되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그날과 똑같은 설레는 감정을 안고 처음 가는 도시를 향해서 하늘 위를 날았다.





뉴델리 공항


 1시간 15분 만에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일주일 동안 시골에서만 지낸 내 눈앞에 마주한 대도시 공항은 다른 세상 같았다. 겨우 7일 만에 우리는 마치 시골쥐가 된 듯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라나시행 비행기가 뜨는 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제1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을 가면 제3터미널이었다. 2시간 정도 웨이팅을 해야 해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가를 찾아갔다.


 7일 만에 보는 브랜드 간판이었고, 7일 만에 먹어보는 도시 음식이었다. KFC 햄버거도, COSTA 커피도 너무 반가웠고 맛있었다.

화려한 성들과 멋진 사막의 경험도 맛있는 햄버거와 커피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희미해져 버렸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그만큼 컸다.





뉴델리 공항에서 바라나시 공항 가기


 바라나시행 더 작은 비행기로 갈아탔다. 키 큰 남자 손님이 고개를 구부려서 걸어야 할 정도로 작은 비행기였다. 하늘을 나는 고속버스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뉴델리 하늘은 듣던 그대로였다. 비행기가 조금만 올라가도 도시가 안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심했다. 뿌연 도시는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뉴델리는 현대식 거대 공항과 KFC 징거 박스와 맛있는 브랜드 커피와 스모그 가득한 하늘만 경험하고 떠나야 했다.





바라나시 공항


 어두워져서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다. 지저분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바라나시였는데 공항은 의외로 깨끗했고, 공항 밖에는 초록 나무가 가득한 공원도 보였다. 라자스탄의 세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에 먼지 풀풀 날리는 건조하고 삭막한 풍경만 봐왔기 때문에 초록의 나무들이 너무 반가웠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항의 첫인상은 내 선입견 안의 바라나시는 최소한 아니었다.


'프리 페이드 택시' 부스부터 찾았다. 호텔 이름을 말했더니 100루피는 부스에 내고, 700루피는 택시기사에게 지불하라며 영수증 뒤에 700이라고 써 주는데 왜 '프리 페이드'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바가지요금을 방지하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금방 택시를 찾았고 호텔로 출발을 했다.





공항에서 호텔 가는 길


 깨끗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공항 밖을 나오자마자 부터 매캐한 냄새가 나고 목도 따갑고 눈도 매웠는데 호텔이 가까워질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창문이 닫힌 택시 안으로 눈에는 안 보이는 연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연기에 유독 약한 내 기관지가 예민한 반응을 보여서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 날 밤, 갠지스강에서 알 수 있었다.

 

 차가 너무 많이 막혔다. 공기도 안 좋은데, 소음 또한 대단했다. 오토릭샤의 엔진 소리와 경적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살던 첸나이도 교통체증과 매연과 소음이 말도 못 했는데 바라나시 도로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너무 많은 자전거 릭샤들이 도로 위의 혼잡함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첸나이에서는 외곽지 큰 시장 같은 곳에 나가야만 가끔 보게 되는 자전거 릭샤여서 처음엔 재미있고 신기했지만 차가 너무 막히니까 그것 또한 관심에서 멀어졌다.


 매연과 소음과 함께 지겨운 시간을 견뎌서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갠지스강의 가트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호텔을 예약했더니 오는 길이 그렇게 혼잡했던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그 밤의 호텔 주변은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려는 힌두인들로 인산인해였다.



 골목 안으로 걸어가다다른 호텔은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혼잡한 도로변이 바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늑했다.

짐을 풀고 저녁부터 먹었다. 1916년에 문을 열었다는 100년이 넘은 그 호텔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자부심이 대단했던 종업원이 추천한 그곳 대표 메뉴인 씨앗 라씨와 씨앗 도사를 시키고, 난과 토마토 수프를 시켰다. 씨앗 라씨와 도사는 명성에 비해 맛은 무난했지만 특이한 음식이긴 했다.





갠지스강 근처의 호텔 주변 밤 풍경


 바라나시까지 왔는데 그냥 잘 수는 없어서 갠지스강 밤 풍경을 구경하려고 골목길을 걸어서 대로변으로 나가봤다. 여전히 자동차와 오토릭샤,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 자전거들이 사람들과 서로 엉켜 있었다. 갠지스강 쪽으로 얼마 걷지 않았는데 이미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골 쥐였던 우리가 금세 도시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휴식이 필요했다. 매연과 소음에 적응도 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의 빠른 걸음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로터리의 탑 있는 곳까지만 갔다가 호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정신이 좀 들었는지 노점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전부리와 야식을 파는 곳이 많았고, 과일, 채소 상인들도 보였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음식 장수들이 모이는 건 당연했다. 노점 카트마다 손님들이 많았는데, 365일이 대목이지 않을까 싶었다. 갠지스강 가트로 내려가는 길목의 바라나시의 밤 풍경은 여행객인 우리 눈에는 그저 흥미로웠고 신기했다.





갠지스강 가는 길의 아침 풍경


 바깥세상은 시끄럽고 혼란했지만 호텔은 조용하고 쾌적했다. 따뜻하게 입고 푹 잘 자고 일어났다. 여행 중에 잠을 잘 자는 일은 즐거운 여행에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갠지스강으로 나가봤다. 조용한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의 혼잡한 풍경과 마주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목이 따갑던 전날 밤의 그 공기는 아니었다. 어둠과 함께 연기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걸어 가도 되는 거리였지만 10루피(170원)를 주고 자전거 릭샤에 올라탔다. 자전거 높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길거리 풍경이 꽤 좋았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대로 영화 필름이 풀리고 있었다. 자전거 릭샤도 천천히, 내 시선도 천천히 그곳의 아침 풍경 속을 지나고 있었다. 마주오는 사람들 모두 자전거의 속도로 내 오른쪽 어깨 뒤로 사라졌다. 때로는 영화 관람객으로, 때로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로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있었다.



 갠지스강 가까이에 내려서 가트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 곳에는 강물 위에 띄우는 꽃으로 장식된 작은 양초를 많이 팔고 있었다. 귀엽고 예뻤다. 노점을 지나고 채소 가게가 있는 골목을 지나고 드디어 가트 계단 앞에 도착했다. 강이 내려다 보였다. 갠지스강이었다.





아침의 갠지스강


 갠지스강,  눈에 처음 들어온 갠지스강은 '아름답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사람들이 많아서 시끄럽고 어수선했는데 내가 느낀 그 아침의 갠지스강은 너무 고요한 강이었다. 아름답고 고요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눈 앞의 풍경에 모두 가려져서 그 순간 내 귀에는 들리지가 않았다.


 아침 해는 어두운 구름을 소심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회색 하늘이 그대로 강물에 빠져있었다. 모두 같은 모양을 한 작은 나무배들은 같은 채도의 비슷한 색감으로 강물 위에 떠 있었고, 부지런한 사공은 이미 손님을 태우고 일출을 보려고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 가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일출 구경은 못했겠지만 그 풍경 속에 잠잠히 떠있는 것도 꽤 좋아 보였다. 우리도 다음 날 아침에 그래 보자고 마음먹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은 '화장터'와 '시체'가 너무 강한 선입견을 내게 만들어 놓았었다. 그 아침에 내가 본,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갠지스강은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 너무 미안했다.



 계단을 내려가서 좀 더 가까이 갠지스강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봤다. 왼쪽은 강, 오른쪽은 가트. 왼쪽은 적막했고, 오른쪽은 북적였다. 내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가트 계단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시끌시끌했고, 강물 위에는 나무배들이 고요히 떠 다닐 뿐이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조용한 강물과 시끌한 가트의 경계는 사람들이 허물고 있었다. 남자들은 윗옷을 벗고, 여자들은 입은 채로 12월의 그 차가운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일부는 머리를 감고, 일부는 목욕을 하고, 어떤 이는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았다. 그들의 성스러운 의식이 내 눈에는 고요함과 혼잡함을 섞는 행위로 보였다. 고요한 강물은 혼잡한 색으로 물들고, 혼잡한 사람들은 고요한 강물로 씻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선에는 그렇게 읽혔다.



 가트 주변에는 각종 종교의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많은 브라만들이 자리를 깔고 기도와 종교의식을 팔고 있었다. 관광객인 타 종교의 우리 눈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무엇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지는 기도의 대상만 다를 뿐이지 종교마다 그 내용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간절함도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했다.



 브라만들의 자리 주변에는 종교의식에 필요한 꽃이나 제수용품을 파는 사람들이 보였고, 좀 더 성스러운 마음가짐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삭발을 해 주는 면도사들도 보였다.

아무 준비 없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의 가트에만 오면 기도와 제사 준비는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도 전국, 아니 세계 전역의 힌두교인들이 모여드는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종교가 다른 내 눈에도 그들의 신앙심과 종교관이 뚜렷하게 보였다. 인도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힌두교인이 가장 많다는 타밀나두 주의 첸나이에서 10년도 넘게 산 우리였다. 귀국을 앞두고 찾은 여행지의 한 곳인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의 첫 모습에서 첸나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종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젊은 청년들이 많아서 놀랐던 시간이었다.


 무엇에 심취해서 의존한다는 것은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내 연약함을 인정하고 신에게 의지하는 수많은 힌두교 청년들을 보면서 크리스천인 나도 내가 의지하는 신에게 내가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갠지스강에서 호텔로 가는 길의 아침 풍경



 가트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전날 밤부터 그날 아침까지 우리 부부 둘 외에는 다른 인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바라나시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외국인은 왜 안 보이는지 궁금했다.


 아침 산책을 끝낸 1시간쯤 지난 그때는 이미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있었다. 도로변 노점에는 아침 식사용 음식들이 즐비했고 금방 찌고, 굽고, 튀긴 음식들은 입맛을 다시게 했다. 튀김을 한 봉지 사서 먹으면서 걸었다. 옥수수가루로 만든 듯한 튀김과자였다. 너무 맛있어서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잊고 배불리 먹어 버렸다.



 숙소를 잡지 않고 추운 길에서 자는 사람들을 갠지스강 쪽으로 가면서 많이 봤었다. 노숙인들도 간혹 있었지만 차림새가 노숙인은 아닌 것이 확연했다. 무료 급식소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그 풍경이 또 그렇게 이색적이고 흥미로웠다. 바라나시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재미있는 풍경 중의 하나가 등굣길의 학생들 모습이었다. 여름만 있는 첸나이에서는 못 보던 교복 위에 털스웨터를 입고, 치마 안에 두꺼운 바지를 입은 학생들은 익숙하지 않아서 눈길이 가는 모습들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아빠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 셰어 오토릭샤나 자전거 릭샤를 타고 학교로 가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그 아이들이 엄마인 내 눈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마주 오는 사람들과 오토바이와 오토릭샤와 자전거와 자전거 릭샤들을 피해 가면서 주변 노점들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걸어서 호텔까지 왔다. 로터리의 높은 탑 위의 '난디 상'(시바신이 타고 다녔다는 소의 동상)은 바라나시에 머문 3일 동안에 호텔 근처임을 알려주는 우리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바라나시 투어 택시 기다리기


 길거리 노점에서 산 튀김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아침은 간단히 먹고 바라나시 투어를 위한 채비를 했다. 호텔 야외 테이블에 느긋하게 앉아서 택시 기사의 전화를 기다렸다. 30여분, 그 잠깐의 시간이 참 여유롭고 좋았다. 갠지스강에서 호텔로 걸어온 그 길의 혼잡함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머릿속이 리셋되었고, 기분도 그렇게 되었다.



 전 날 밤에 공항에서 호텔로 데려다준 택시 기사가 바라나시 투어를 제안했고, 호텔 앞으로 픽업을 오기로 얘기가 되었었다. '바라나시'라고 하면 힌두교 성지인 갠지스강만 떠오르는데 유명한 불교 성지도 있다고 했다. 3시간 투어 코스를 짜 오겠다 하고 헤어진 그 택시 기사에게서 약속한 정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일찍 와서 기다렸다가 약속 시간에 맞추어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일에 감동을 받은, 약속 시간은 어기라고 있는 것인 줄 알고 산 인도 11년 차 한국인 우리 부부였다.

택시가 정차해 있다는 골목 끝의 대로변으로 나갔다. 갠지스강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채, 우리는 바라나시의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서 택시에 올랐다.





출처 .. HMAP PO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