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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Jan 02. 2021

새해의 증거

2021년이다. 2020년 12월 31일 오후 열 시 반에 취침한 나는 다음 날 오전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두근거리지도, 바다로 해를 보러 갈 마음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 추암 해수욕장까지는 도어 투 도어 정확히 15분이다. 도로에서의 시간만 따지면 겨우 10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베란다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새해의 햇볕을 느끼는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지구는 열심히 태양 주변을 돌고, 거기에 의미를 갖다 붙인 건 인간일 뿐이다. 나는 별 감흥 없이 기계처럼 어제 하던 대로 생활한다. 왠지 달력 공장 사장님에게 미안해지는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계란 한 판이니, 불혹이니 하면서 나이에 어떤 실질적인 형태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새해맞이에 심드렁해질 수 있다면 나이는 일종의 추상적 기호에 가까워진다. 이건 "나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 같은 우월감이나 자기 확신의 강요라기보다 일종의 사고 패턴으로서 그렇다는 의미다. 나는 새해에도 한심한 습관 하나를 지속한다. 바로 컴퓨터 게임이다. 내게 게임은 은밀한 취미로 아이들과 아내가 잠든 늦은 밤과 새벽에만 한두 시간씩 한다. 자녀 교육면에서나 자기 계발 측면에서 하등 유익할 것 없는 취미이지만 어쩐지 그만둘 수 없어 계속한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헤드폰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플레이하는 건 나만의 기묘한 습관이다. 대관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게임의 속성이 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으음 나는 게임을 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을 들었으니 아주 멍청하고 의미 없는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하면서 독특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Slay the spire라는 카드게임의 존재를 인지한 이후 하루빨리 플레이해야겠다는 욕구로 가득 차 있었는데, 피곤한 탓인지 번번이 숙면을 취해버려 게임에 실패했다(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무의식 중에 카드 게임 플레이는 나의 우선순위 리스트 상단에 자리 잡게 되었고, 오후 여덟 시에 그 기회가 왔다. 보통 열 시는 되어야 눈을 비비는 둘째가 갑자기 아내에게 재워달라고 요청을 보냈다(둘째는 아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잠드는 습관이 있다). 아이를 재우고 단행본 원고 작업을 할 생각에 아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겜돌이인 나도 하루의 시계가 두 시간 앞 당겨진 듯 뜻밖의 행운에 감사하며 컴퓨터를 켰다. 이럴 수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나는 얼른 게임을 설치했다. 한글화까지 잘 적용되어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할 것 같았다. 본격적인 플레이 전 그래픽 설정과 화면 크기 조정을 하고 있는데 서재 문이 벌컥 열렸다. 

"아빠! 뭐해?"

큰 녀석이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버려 Alt + F4(화면 닫기)도 하지 못하고 마우스를 꽉 쥐었다. 

"어어 이제 끌 거야."

"게임했지?"

"아니야. 그냥 뭐 하는 거야."

"게임 종료 방금 눌렀잖아."

"이제 껐어."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즉 아이가 깨어있고 나는 아빠와 일상인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에 게이머로서의 나는 봉인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심지어 아이에게 어설픈 변명이나 하며 게임 장면 - 정확히는 게임 내부 환경 세팅 -을 들키고 말았다. 내가 컴퓨터 전원 종료 버튼을 시도하자 큰 아이가 내 등짝을 아주 세게 후려쳤다. 오리털 패딩조끼가 손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며 굉장한 소리를 냈다. 

"아빠! 부끄럽지?"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땀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겨드랑이에서 나와 옆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큰 애가 언제 이렇게 큰 거야. 아, 일곱 살이 되었구나. 해가 바뀐 거야. 퍽! 나는 새해가 밝아오는 소리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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