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있는 어린이는 당연하지 않다
21.03.26
어제 저녁 8시가 넘었을 무렵이었나,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폰이 자꾸 부르르 진동했다. 에어프라이어 위에 올려둔 탓인지 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나는 알람을 싫어하는 편이라(뭔가 계속 재촉받는 느낌이 성가시다) 채팅방 무음 처리를 해놓곤 하는데 이렇게 울려대는 것으로 봐서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릇 거품을 다 헹구지 못한 채 고무장갑을 벗었다. 중요한 전달사항 일지도 모른다. 교내 코로나 환자 확진 같은. 그러나 카카오톡에 쌓여있는 스무 개의 채팅은 우리 반 학생들이 모인 채팅창에서 나온 것이었다.
와~ 쌤도 초대된다.
진짜 했어?
응응
안냐세여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첫 시작은 알 수 없다) 만들어진 학급 채팅창에 즉흥적으로 초대를 받았고(강제로) 신기한 취급을 당했다. 나는 퇴근 이후 두 아이를 돌봐야 하고, 온라인 수업 영상을 제작해야 하고, 설거지를 마저 끝내야 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 작년 5학년을 가르칠 때보다 많이 어린 느낌이다. 화를 내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얘들은 겨우 11살 먹은 인생 초초년생이다. 나는 담담하게 썼다.
퇴근 이후에 선생님을 사적인 채팅창에 초대하여 잡담을 하는 건 예의에 무척 어긋난 행동입니다. 이번은 처음이니 넘어가겠습니다. 내일 봅시다. 푹 자요.
아이들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채팅창을 나갔다. 나도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설거지를 마저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악의가 없다, 화를 내면 도리어 이해를 못 한다. 차라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해주고 다음 행동 지침을 알려주는 편이 낫다. 이것이 교직 경력이 쌓이면서 체득한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오늘은 한 학생이 미술 작품을 한 손으로 휙 던지고 갔다. 발걸음도 사납고, 눈에 원망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두 번이나 추가 작업을 요구해서 그랬던 것 같다. 미술 시간의 수업 주제는 전통 문양을 이용하여 도자기 꾸미기. 아이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두 장 분량의 전통문양 예시 자료를 내어주고, 원하는 문양을 그대로 쓰거나 변형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자신이 평소에 자주 쓰는 귀여운 일반 문양으로 도자기를 꾸몄다. 나는 수업 주제와 맞지 않아 배경이나 도자기 빈 곳을 전통문양으로 꾸며달라고 부탁했다. 그것 때문에 골이 난 듯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전통 문양을 배우는 시간에 전통 문양을 그리라 했다고 종이를 선생님한테 던져요? 아주 무례합니다."
나는 아이를 불러 따끔하게 꾸중했다. 녀석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두 손으로 제출하도록 다시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는 "잘 했어요.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하고 칭찬했다. 예의는 습관이고,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매너가 나쁜 사람은 환영받기 힘들다. 아이는 바로 툴툴 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신규 시절이었다면 다시 불러 세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일단 지켜보았다. 감정적인 사안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시간 뒤 나는 녀석과 농담을 나누면서 장난쳤다. 골든벨을 울려서 막대 사탕도 먹었다. 예전에는 이런 기분의 흐름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는데, 이제는 원래 이런가 보다 한다.
어린이를 상시 상대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기분 나쁜 건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손쉽게 단정짓는 어른이다. 특정 상황에서 버릇이 없는 특정 아이는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항시 나쁘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잘 모르는 그 녀석을 위해 돕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이다. 다정다정과 차근차근이 느껴지도록.
어른은 자기 마음대로 사전에 '버릇 있는 아이'를 상정해 두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으면 '요즘 애들 개념 없다'라고 하거나 '부모가 애를 어떤 식으로 키웠기에'라며 혐오를 표출한다. 아마 본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버릇 있는 아이'는 아주 극소수이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요즘 아이' 운운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어른 노릇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배려심, 책임감이 부족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어쩌다 만나는 어린이에게 조차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을 초등학교 교실로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 하루 만이라도 스물두 명의 어린이와 아침부터 오후까지(쉬는 시간, 점심시간 구분 없이 언제나 함께) 보낸다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미쳐버릴려나. 인간에 대한 수용력을 기르는 차원에서라도, 사람들을 학교로 보내 어린이의 세계를 실감해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