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주간이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갑자기 너무 많은 말을 쉴 새 없이 들어서인지, 4교시 무렵에는 고막 근처에서 찡 하는 고주파음이 들렸다. 지난 일주일간 적정한 소음에 익숙해졌던 귀가 갑작스러운 말의 홍수에 적응을 못 하는 듯했다. 머리까지 울리는 느낌이다.
이건 말의 홍수다. 바다라고는 표현할 수 없다. 홍수 또는 격류가 적절하다.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급작스럽고, 거칠다. 말의 홍수 현상은 등교 주간의 월요일이 가장 심하다. 그야말로 모든 걸 휩쓸어갈 기세다. 다음 시간 준비합시다, 교과서 준비해 주세요, 조용히 학습 영상을 시청합시다. 이런 주의 사항을 몇 번이나 주었는지 모른다.
평소에 집에서 말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인가. 아니면 지속된 방역 생활에, 오프라인 소통이 목말랐던 것일까. 아이들은 쉬지 않고 떠든다. 하루를 꼬박 새워 속에 든 이야기를 토해내고 나서야 잠잠해진다(그래서 화요일은 좀 덜 한 것인가). 그래도 오늘 말의 홍수에 떠내려온 것들 중 꽤 멋진 것들이 있다.
하나, 채승이는 요즘 페트병으로 돈을 번다. 평생학습관 정라동사무소 앞에 순환자원 회수 로봇이 한 대 있다. 로봇이라고 하니까 두 발로 돌아다니면서 집게로 동네 자원을 줍는 로봇을 상상할지 모르겠으나, 이 친구는 점잖게 서있다. 말이 로봇이지 기계가 더 정확한 용어일 것이다.
어쨌든, 이 친구에게 내용물을 비우고 깨끗이 씻은 페트병과 캔을 주면 돈으로 환급해 준다. 엄밀히 말하면 포인트로 선지급하였다가 2000p 이상부터 현금으로 바꿔주는 시스템이지만, 돈이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채승이는 재활용품도 처리하고, 용돈벌이도 할 겸 꾸준히 로봇을 방문 중이다.
채승이 말에 따르면 이 기계는(본인도 로봇이라고 인정하지 않음) 인공지능이 있어서 알아서 재활용품 종류를 인식해 선별한 후 압축 보관한다고 한다. 흠, 머리는 좋은 듯하다. 허나, 초등학생은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로봇 취급을 해주지 않는다. 뭔가 안타깝지만 대견한 로봇이군요.
둘, 4교시 영어 전담 수업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이제 점심시간이라 교실에 교과서와 필통만 내려놓고 화장실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곧 급식실로 가기 위한 긴 줄이 교실에 늘어설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학생들이 한 명씩 내게 와서는 똑같은 말을 했다.
"선생님, 화장실 바닥에 사탕 껍질이 떨어져 있어요."
"그랬구나."
"영어 선생님이 주신 것 같아요. 저도 똑같은 걸 받았거든요."
하고서는 주머니에서 실물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모두 한결같은 대사를 했고, 사탕 흔들기까지 거의 흡사했다. 뒤늦게 태윤이가 와서는 산불 신고하는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길래 "화장실에 사탕 껍질 떨어져 있다고? 응, 선생님도 알아." 했더니 고개만 끄덕이고 갔다. 그렇게 다섯 명을 상대하고서 점심 먹으러 가려하는데 정빈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오른손을 쭉 내민 채로.
"선생님 화장실에 이런 게 떨어져 있었어요."
정빈이의 하얀 손바닥 위에는 파란색, 보라색 껍질이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말로만 무성했던 사탕 껍질의 정체가 밝혀졌다. 흐음, 내 머릿속에서 정빈이 도덕 수행평가 가산점 올라가는 소리가 뿅뿅 들렸다.
정빈이는 이것 말고도 칭찬할 행동이 너무 많아서 다 계산하려 치면 멀티 콤보에, 잭 팟 스코어까지 반영해야 한다. 나는 담담하게 정빈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녀석은 소리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꿈치를 아래로 찔렀다. 예쓰! 정빈이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기쁨을 만끽했다. 기특한지고.
말의 홍수로 점철된 하루가 끝났다. 몸이 흠뻑 젖었다. 그러나 처참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무언가 손해만 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수가 나면 물에 온갖 것들이 둥둥 떠내려 온다. 소파며, 주전자 심지어 새끼 돼지까지 버둥거린다.
나는 격류에 휩쓸리다 우연히 새끼 돼지를 품에 안고 뭍으로 나오게 된 사람처럼 귀중한 이야기 몇 개를 건졌다. 학교의 기능 중에는 아이들의 말을 넉넉히 들어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직업상 계속 들어야만 하는 나는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지만, 동시에 약효 뛰어난 연고 같은 이야기도 받는다.
이건 월급으로 전환할 수 없는 일종의 보너스다. 뭐, 원치 않는다고 거절할 수 있는 보너스는 아니지만 홍수에 떠밀려 허우적 댈 때 요긴한 튜브 정도는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