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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의 맛

새싹 배지 14개

21.04.13

by 이준수

지난번에 이어서 학생 L 이야기를 계속해보려 한다. L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이후 담당 선생님과 연락하여 강연 일정을 잡았다. 시간은 5월 8일 오후 두 시. 토요일이다. 함께 강연을 듣는 동아리 학생들이 함께 읽을 거라며 <선생님의 보글보글> 14권을 한꺼번에 주문해주셨다. 오 마이!(책 사서 읽어 주는 분이 최고다)


절대 허투루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어, 하며 강연 원고를 준비하던 차에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L이 소속된 동아리에서 판매하는 어린이날 배지를 달아보지 않겠냐며. 나는 다소 의아했다. 고등학생인데도 어린이 날을 챙기는 것인가. 동심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러나 사연을 읽어보니 그만 기특해져서 열 개나 주문하고 말았다. 다소 길지만 주문서 소개글을 옮겨 본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날(5월 5일) 누구나 새싹 모양의 배지를 달아 어린이날을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라며 새싹 배지를 달 것을 제안했습니다.

동해ㅇㅇ고 자율동아리 '글ㅇㅇ'은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을 읽고, 어린이가 입가에 웃음을 달고 꿈을 꾸며, 그 꿈을 꽃피울 세상을 만들 하나의 의견이 책 속 활자로만 머물지 않도록, 저희의 작은 실천으로 옮겨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의 노력을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어린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재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작은 움직임에 여러분도 함께해주셨음 합니다.

저희의 활동에 작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나보다 나은 예비 선생님 같았다. 수능을 100일 앞두고 처음 교대의 존재를 인식하고, 점수에 맞춰 편안하게 교직을 선택한 나보다 훨씬 준비가 잘 된 고등학생. 나는 이대로 쳐져 있을 수 없지 하며 밤까지 수업 준비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수업 준비를 하는 평범한 교사의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보다도 간절하니까.


다음 날, 아내에게 배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런데 아내는 벌써 4개나 샀다고 웃었다(혹시 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경로로 그냥 학생들 마음이 예뻐서 배지를 구매한 것이다. 으음, 좋은 취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의 마음은 대게 비슷한 것인가. 아무튼 우리 집에는 새싹 배지 14개가 생길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단체 주문해 주신 내 책 <선생님의 보글보글>도 14권이다. 묘한 우연이다. 물론, 기브 앤 테이크 정신으로 맞춘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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