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말 좀 그만해 줘. 말 좀 해.

21.07.15

by 이준수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학교에 오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체감하기에는 '말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입을 열어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KF94 마스크와 비말 차단 가림막으로도 제지할 수 없다. 어제 요빈이가 교과서 검사를 받고 돌아가다가 "아, 방학 안 하고 싶다."라고 툭 말했다. 나는 흠칫 놀라(방학이 없다는 가정은 우주 멸망과 같은 의미이기에) 쳐다보았다. 보통 방학이 일주일도 안 남았으면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정론이지 않나. 흠, 그런데 요빈이만 그런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학교에 나오고 싶어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 수업이 아이들 영혼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미를 보장하기에... 는 거짓말이고 뭔가 학교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겠지. 스마트폰 게임이 줄 수 없는 수다의 맛, 유튜브 댓글 창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같은 공간의 유대감. 핵심은 어쨌든 말이다. 음성에 실린 미묘한 뉘앙스와 유쾌한 분위기가 아이들을 학교에 오고 싶게끔 만든다. 단원 평가의 지루함도 수학 익힘의 난해함도 극복하게 한다.


말이 많다는 건 생명력이 넘친다는 의미도 된다. 쉬는 시간에 못다 나눈 말은 수업으로 이어진다. 학습 주제와 어울리는 말을 해 준다면 담임으로서 참으로 고맙겠으나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나는 '잡담을 삼가 주세요.'라며 부질없는 주의를 주지만 무용하다. 그러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면 '쓸데없는 말 좀 그만해!'하고 성질 머리를 여과 없이 내보인다. 그럼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수업 시간에 나와야 할 질문도, 번뜩이는 대답도 목구멍 뒤로 숨는다. 나는 십 분 만에 '말 좀 해.' 하고 부탁한다. 극단적인 태세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시 말이 늘어나고, 수업시간이 소란스러워지고, 나는 화나고, 말이 줄고... 이런 패턴을 구십구만 번쯤 반복하다 보면 퇴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어쩐지 매우 중층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철학처럼 느껴진다. 여느 인생이 안 그렇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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